한국과 일본의 WBC 아시아 예선 마지막 경기는 승패를 떠나 평생에 보기 힘든 명승부였다.
박찬호(샌디에이고)는 태극마크를, 스즈키 이치로(시애틀)는 일장기를 달고 뛰었다. 다른 모든 선수 역시 개인이나 팀이 아닌 국가의 자존심을 걸고 싸웠다.
경기 내내 박진감이 넘쳤다. 투수가 던지는 공 하나에, 타자가 휘두르는 방망이질 한 번에 도쿄돔을 가득 메운 팬들의 한숨과 박수가 교차했다.
4회 말 우익수 이진영(SK)의 허슬플레이는 이날의 하이라이트였다. 0-2로 한국이 뒤진 상황에 주자는 2사 만루였다. 일본의 니시오카 쓰요시(롯데)가 친 타구는 우익선상에 떨어지는 안타성 타구.
전력 질주한 이진영은 몸을 날렸고, 공은 그의 글러브에서 나왔다. 이 장면에서 한국 팬뿐 아니라 일본 팬까지 기립해 박수를 보냈다. 한국의 극적인 역전승도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극도의 집중력이 없었다면 결코 나올 수 없는 플레이였다.
좀처럼 보기 힘든 이치로의 내야 송구, 일명 ‘레이저 빔’도 나왔다. 5회 1사 2, 3루에서 이병규의 우익수 희생플라이 때 이치로는 공을 잡자마자 마치 투수의 투구 같은 3루 송구를 했다.
이날 한일전은 한국과 일본 야구의 핵심만을 뽑아놓은 한판이었다. 스코어는 3-2였지만 야구에서 가장 재미있다는 케네디 스코어(8-7)보다도 흥미로운 경기였다.
이날 도쿄돔을 찾은 사람들은 행운아들이다. 평생을 두고 기억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경기를 봤기 때문이다.
“투수들 잘 던졌다”
▽김인식 한국대표팀 감독=역시 투수들이 잘 던졌다. 일본 선수들은 발도 빠르고 타격도 날카롭다. 우리 투수들이 이들을 잘 막아 줬다. 그에 못지않게 4회 말 우익수 이진영의 멋진 플레이가 결정적이었다. 9회에 마무리 오승환 대신 박찬호를 올린 것은 국제경기인 만큼 베테랑을 내보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본까지 와서 응원해 준 팬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승엽 홈런 훌륭했다”
▽오 사다하루 일본대표팀 감독=이승엽의 역전 홈런이 훌륭했다. 투수 이시이는 최선을 다했다. 3회 이후 추가 득점에 실패한 게 패인이다. 우리 타자들은 못했고 한국 투수들은 제몫을 다했다. 4회 말 이진영의 호수비가 우리로서는 뼈아팠다. 1라운드에서 한국을 이겼으면 긴장감이 떨어졌을 텐데 미국에서 열리는 본선 8강전에서는 약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