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속에서 남자와 여자는 상대의 상황을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고 자리를 바꾼다. 그들은 스스로를, 그리고 그들의 관계를 보호할 욕심으로 무의식적으로 자리를 바꾼다. 그들은 이동하면서, 그리고 상대를 꽉 움켜잡으면서 스스로를 지켜 내려 하는 것이다. 성숙한 존재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사랑이 그와는 반대로 서로를 구속하는 것이 되어 버린다. 이처럼 원래의 사랑과는 정반대의 사랑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는 개별적으로 또는 동시에 사랑증후군을 경험한다.―본문 중에서》
지난 몇 년간 이 땅의 이혼율은 최고 기록을 경신했고 독신자는 급격히 늘어났다. ‘바람피우기’는 당당해졌으며 ‘일단 살아보자’는 동거가 유행했다. 그래도 사랑에 대한 갈망은 식지 않는다. 사랑은 모순 덩어리다. 극도의 기쁨을 선사하는 원천인 동시에 잃어버리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의 대상이다. 상대에 대해 한없이 관대해지는 동시에 극도로 권위적이게 되기도 하고 관능적인 동시에 냉정해지기도 한다. 도대체 일관성을 찾기 어려운 이런 상태는 사랑일까, 아니면 사랑 비슷한 그 무엇일까.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저자는 사랑을 고찰하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나란히 또는 팔짱을 끼고 걷거나 포옹을 하는 남녀들을 관찰했다.
완전히 자유로운 남자와 여자라면 공간 내 위치 선택에서 동일한 자유를 누릴 것이고, 이를 전제로 한다면 두 사람이 상대의 왼쪽 혹은 오른쪽에 설 확률은 대략 50%다. 그런데 신체적 접촉 없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자유롭게 걷는 커플의 경우 남성이 여성 왼쪽에 있는 비율은 53%였지만, 포옹하듯 감싸 안고 걸어가는 경우엔 73%의 남성이 여성 왼쪽에 있었다. 상대에 대한 욕망을 확인한 애정 관계가 공간 내 위치 이동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그가 남녀 2만 쌍을 관찰한 후 쓴 이 책은 사랑과 사랑을 가장한 사랑증후군에 관한 과학적, 심리학적 보고서다. 왼쪽이네, 오른쪽이네 별 사소한 것 갖고 야단이라며 가볍게 넘기지는 말자. 지난 50년 동안 세상이 변했고 남녀 관계 역시 많은 변화를 겪었다. 표면적으로 볼 때에는 남성과 여성이 비슷하게 자유를 누리고 선택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사랑을 시작하면, 3만5000년 전 생성된 ‘남자는 여자의 왼쪽에’라는 석기시대의 전통적인 조건화가 여전히 등장한다. 그리고 타인을 심리적으로, 또 물리적으로 소유하고 소유당하려는 전통적인 갈등 또한 계속된다.
이 조건화의 고리를 끊으려면? 시대가 달라졌으니 연인들 당신들도 달라져야 한다!
집착을 버리고 내 안의 이성에 귀를 기울이며 둘 사이의 차이점 대신 유사점을 찾으라는 것이 저자의 충고다.
인간의 영혼은 두 가지 상반되는 열망을 간직하고 있다. 친밀에 대한 열망과 자유에 대한 열망,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은 욕망과 다른 사람들과 분리되고 싶은 욕망이 뒤섞여 있다. 이런 열망을 잘 조절하지 못한다면 사랑으로 가장한 사랑증후군은 자신과 타인을, 그리고 세상을 고통스러운 싸움으로 인도할 것이다.
사랑은 가족을, 친구를, 적들을 잊어버리게 한다. 사랑은 모든 계산을, 모든 걱정을, 모든 앞뒤 계획을 다 없애 버린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잠시 잊어버린다 해도 자기 자신만은 결코 잊어선 안 된다. 우리가 원하는 사랑은 ‘부드러운 억압’이 아닌 ‘조금 불편한 자유’이니 말이다.
김은령 월간 ‘행복이 가득한 집’ 편집장·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