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천재 타자’ 스즈키 이치로(33·시애틀)는 메이저리그도 인정하는 슈퍼스타다.
그런 그가 5일 끝난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아시아 예선에서는 13타수 3안타(0.230)로 부진했다.
오 사다하루 일본야구대표팀 감독은 이치로를 적극 변호했다. “이치로 역시 한 명의 인간”이라고.
5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한일전에서 이치로는 각광을 한 몸에 받았다.
이치로가 타석에 들어설 때면 흡사 불꽃놀이를 하듯 사방에서 플래시가 터졌다. 관중은 한목소리로 “이치로∼”를 연호했다. 이날 관중은 4만353명. 8만 개가 넘는 눈이 이치로의 활약을 기대하고 있었다.
한국 팀에서도 비슷한 중압감을 느낄 만한 선수가 있었다. 바로 이승엽(30·요미우리)이다.
이승엽의 이름 앞에는 항상 ‘국민타자’란 수식어가 붙는다. 못할 때는 더없이 무거운 짐으로 느껴질 수 있는 별명이다.
그런 부담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은 정신력이다. 그런 점에서 이승엽은 분명 이치로를 능가했다.
이승엽은 3회 2사 만루, 5회 2사 1, 3루 찬스에서 모두 범타로 물러났다. 어지간한 선수 같으면 제 풀에 쓰러질 만했다. 그러나 이승엽은 8회 이시이 히로토시(야쿠르트)를 상대로 결승 2점 홈런을 쏘아 올리며 ‘도쿄의 영웅’이 됐다.
비단 이날 경기뿐 아니다. 이승엽의 정신력은 큰 경기, 그래서 부담을 안고 뛰어야 하는 상황에선 어김없이 발휘됐다.
이승엽은 삼성 시절이던 2003년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한 시즌 아시아 홈런 최다 신기록인 56호 홈런을 쳤고,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는 이상훈(당시 LG)을 상대로 동점 3점 홈런을 쳤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마쓰자카 다이스케(세이부)를 상대로 홈런을 기록했으며 작년 한신과의 일본시리즈에서는 3개의 홈런을 몰아 쳤다.
야구는 10번 중 3번만 안타를 치면 3할 타자로 대접을 받는 종목이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치느냐가 더욱 중요하다. 이승엽은 지금까지 ‘국민’의 기대를 저버린 적이 없다. 이치로는 일본의 ‘국민타자’가 아니지만 이승엽은 한국의 ‘국민타자’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도쿄에서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