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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카페]8000억 이러쿵 저러쿵

입력 | 2006-03-08 03:05:00


《헌납금 8000억 어디쯤 가고 있을까. 사람들은 여전히 그 ‘속’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삼성으로선 이 돈이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샤일록의 살 1파운드’가 돼버린지도 모르겠습니다. 남의 속, 가늠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자기 속을 내보이기도 어려울 겁니다.

믿습니다. 초일류 삼성, 그 이름대로 약속대로 잘하리라 믿습니다.》

삼성이 8000억 원을 사회에 조건 없이 헌납하겠다고 밝힌 지 7일로 한 달이 됐습니다.

그동안 삼성은 큰돈을 내놓고도 적지 않은 가슴앓이를 해야 했습니다. 한쪽에서는 ‘정부와 좌파 세력에 항복한 것 아니냐’, 또 다른 쪽에서는 ‘돈으로 과거를 무마하려 하느냐’는 비판을 동시에 받았습니다.

여기에 노무현 대통령이 나서 헌납금 관리 절차에 정부가 개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는 바람에 문제가 더 꼬이기도 했습니다.

일부에서는 “삼성이 사회에 돈만 내놓고 제대로 된 후속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사회공헌 세부 계획과 중소기업 상생 방안 수립 작업도 지지부진하다는 것입니다.

현재 삼성의 후속 조치는 장충기(부사장) 구조조정본부 기획팀장이 총괄하고 있습니다. 기획팀 재무팀 홍보팀 임직원들로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5월 말 마무리를 목표로 중소 협력업체와의 상생방안과 사회공헌 세부계획을 만드는 중입니다.

일각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삼성은 이번 일을 장기적 안목에서 접근하고 있는 듯합니다. 요란하지 않으면서도 내실 있는 후속 대책을 내놓겠다는 것입니다.

전 임직원의 자발적 사회봉사 계획을 마련하고도 별도의 발표 없이 계열사 사장단 회의 보고로 마무리한 것이 이런 분위기를 잘 보여 줍니다. 예전과는 달라진 접근 방식입니다. 삼성 구조조정본부의 한 임원은 “지금 삼성에 필요한 것은 말보다 행동하는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8000억 원의 관리 주체 논의에서 헌납한 삼성의 뜻이 완전히 배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논의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하고서 정부와 구체적으로 협의하면 자칫 오해를 받을 수 있다”면서도 “정부에서 요청이 오면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삼성은 보안이 가장 잘 지켜지는 기업 중 하나입니다. 언론의 취재도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으로 삼성을 평가하고 매도하는 분위기는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삼성이 이번 일을 어떻게 마무리할지 차분하게 지켜볼 때라는 생각이 듭니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