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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난쟁이 뭉쳐 거인이 되다…가상기업 ‘몰드존’ 성공비결

입력 | 2006-03-08 03:05:00

김재명 기자


《7일 오후 2시 경기 시흥시 무지내동에 있는 금형(金型) 생산업체인 ‘몰드존’. 6개 동으로 이뤄진 공장마다 쇠를 깎는 기계 소리가 쉼 없이 들려왔다. 중국의 값싼 노동력에 밀린 서울디지털산업단지(옛 구로공단) 일대의 금형업체들이 일감을 찾지 못해 기계를 놀리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금형은 가전제품이나 자동차의 플라스틱 부품을 찍어 내기 위한 틀을 만드는 산업. 쇠를 정밀하게 깎으려면 높은 수준의 기술력이 요구되지만 5000여 개의 영세 업체가 난립하면서 1990년대 후반부터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몰드존은 예외다. 중소업체들의 ‘기술 협업’이 이런 차이를 낳았다. 경영 전문가들은 몰드존의 사례를 중소업체들의 생존 대안으로 주목하고 있다.》

○뭉치면 대기업도 두렵지 않다

몰드존은 9개 중소업체가 2004년 각각의 전문기술로 뭉쳐 만든 ‘기술연합군’이다.

중심 역할을 하는 DNC존이라는 회사가 일감을 수주해 설계를 하면 나머지 8개 기업이 깎기-열처리-다듬기-조립 등 공정별로 각자의 전문성을 발휘하는 식이다.

생산된 제품은 몰드존이라는 통합브랜드로 팔리지만 실제 몰드존이라는 회사는 없다. 공정별로 전문화된 기업이 별도 법인으로 존재하면서 그때그때 뭉쳐 일한다는 점에서 ‘가상 기업’인 셈이다.

몰드존 생산방식의 가장 큰 장점은 각 업체가 본연의 업무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된 점.

기존 금형 생산방식은 영세 금형업체들이 대형 업체에서 공정별로 일감을 따내야 했다. 이 때문에 영세업체 사장들은 낮에는 일감을 따내기 위해 뛰어다니고 밤에는 납기를 맞추기 위해 일해야 했다.

몰드존에서 정밀가공을 담당하는 성환테크 안재억 대표는 “우리가 가장 자신 있는 부분에만 전념할 수 있어 행복하다”면서 “예전에는 일이 많아도 이윤이 박해 기계 구입비와 인건비를 빼면 실제 쥐는 돈은 월 200만 원도 안 됐다”고 말했다.

○2년 만에 매출 6배로 급증

무엇보다 큰 수확은 고만고만한 영세회사들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해 온 금형 제조에 ‘표준화’를 도입해 ‘고객의 신뢰’를 얻은 점이다.

설계에서부터 가공 조립 등 모든 공정이 즉시 인터넷으로 관리되므로 바이어의 요구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게 됐다. 한 장소에 각종 설비와 인력을 공유한 뒤 원가는 떨어진 반면 납기일은 평균 90일에서 60일로 단축됐다.

몰드존의 이런 생산방식은 놀라운 경영 성과로 이어졌다. 몰드존을 구성하기 전 9개사 매출은 모두 합쳐 25억 원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150억 원으로 늘어났다.

DNC존 이창호 사장은 “올해는 경기 화성시에 중대형 금형 전문생산공장인 제2의 몰드존을 지어 250억 원의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러 기업이 협업으로 이룬 성과를 공평하게 나누는 일이 간단치 않지만 몰드존은 ‘e-매뉴팩처링 시스템’으로 해결했다. 이 시스템은 전체 생산 과정에서 각각의 공정 기여율을 정확하게 컴퓨터로 산출해 주는 소프트웨어다.

이 프로그램을 개발한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이석우 e-가공공정팀장은 “원가, 발주금액, 공정별 비용 등에 관한 정보가 공개된다”면서 “기업 간 협업이 필요한 제조업 분야에서는 어디나 이 시스템을 적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이태업 산업공학과 교수는 “몰드존은 각각의 기업이 인터넷을 통해 마치 하나의 기업처럼 활동한다는 점에서 가상 기업의 한 형태”라면서 “국내 중소기업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좋은 모델”이라고 평가했다.

시흥=김창원 기자 chang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