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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에서]아카데미의 세계화

입력 | 2006-03-08 03:05:00


아카데미상 시상식은 주류 미국인들의 보수적 가치를 할리우드 방식으로 심어 주는 무대라는 게 중평이었다. 오죽하면 ‘늙은이들만의 행사’라는 조롱이 나왔을까. 흑인 여배우(핼리 베리)에게 주연상이 돌아간 게 불과 4년 전이었다.

대중을 환호하게 만드는 영화가 아니라 대중을 ‘고민하게 만드는 영화’를 고른 올해의 아카데미는 여러모로 달랐다. 무엇보다 감독상에 인종적 소수자인 아시아계 리안 감독이 지명된 것이 정점을 이뤘지만, 사실 행사 내내 소수 인종의 모습이 비쳤다.

우선 중국 여배우 장쯔이가 시상자로 나선 것이 이색적이었다. 키 큰 백인 미녀들 사이에서 작은 체구의 그녀가 시상대로 걸어 나오는 모습은 신선했다. 마침 그녀가 주연한 ‘게이샤의 추억’이 촬영상 미술상 의상상을 차지해 동양 문화에 보내는 할리우드의 애정을 실감하게 했다.

장편 다큐멘터리 상을 받은 ‘펭귄-위대한 모험’ 스태프 중 한 사람은 수상 소감 대신 ‘I can't speak English(난 영어를 못해요)’라고 말했다. 외국어영화상 수상작인 남아프리카공화국 영화 ‘초치’의 개빈 후드 감독은 “I love Africa(아프리카를 사랑해요)”를 연발하기도 했다. 작곡상(브로크백 마운틴)을 수상한 구스타보 산타올라라는 “이 상을 내 나라인 아르헨티나, 또 어머니를 비롯한 남미에 계신 모든 분께 바치고 싶다”고 말했다.

‘글로벌 아카데미’는 자의든 타의든 다인종 사회로 넘어가는 미국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 준다. 그러나 리즈 위더스푼의 여우주연상 수상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지만 스탠퍼드대를 졸업한 뒤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두 자녀의 어머니 역할도 충실히 하는 등 ‘미국적 꿈의 이미지’를 잘 보여 주는 여배우라는 이미지가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