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가 각국 농업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요?” 이곳은 덴마크에서 세 번째 도시로 꼽히는 오덴세의 달룸 농업경영대. ‘농업 경영전문가 과정’ 1학년의 한 수업시간에 교수가 질문을 던졌다. 중국과 케냐, 파키스탄, 우크라이나 출신의 학생 4명은 앞 다투어 손을 들며 자기 나라의 농업에 세계화가 어떤 압력을 주는지 설명하려고 했다. 교수가 칠판에 큼직하게 ‘세계화(Globalization)’라고 토론 주제를 써 놓은 이날 수업은 경영학 중 국제관계를 다루고 있었다.》
코펜하겐에서 직행 고속열차로 1시간 넘게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이 학교의 ‘농업 경영전문가 과정’은 덴마크에서 손꼽히는 농업 관련 직업교육으로 유명하다. 이 과정에는 외국인이 비교적 쉽게 입학할 수 있지만 학사관리가 엄격해 입학만큼 졸업이 쉽지는 않다. 아스게르 클라우센(61) 부학장은 “입학생 40명 중 10%인 4명 정도는 중도에 포기하고, 12%인 4, 5명은 최종 졸업시험을 통과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이 학교 ‘농업 경영전문가 과정’ 졸업생이 수준을 유지하는 배경에는 덴마크 농업의 특수성이 놓여 있다. 덴마크 농업은 크게 낙농과 양돈의 두 가지 부문. 두 부문 모두 국내 소비량의 400∼500배에 이르는 농산물을 만들어 전 세계로 수출한다. 튀게 모르텐센(46) 교수는 “덴마크 농산물은 품질이 우수하기 때문에 당연히 가격도 비싸다”고 스스럼없이 말했다.
이렇다 보니 덴마크에서는 아무나 농업에 종사할 수 없다. 9년간의 초등, 중학교 의무교육을 마친 뒤 농업 직업학교를 나와야 한다. 농업 직업학교에서는 ‘2개월 수업→12개월 실습→5개월 수업’의 1과정과 ‘17개월 실습→6개월 수업’의 2과정이 개설돼 있다. 1, 2과정을 차례로 마쳐야 비로소 ‘국가공인 보통 농부’로 인정돼 농장 운영이 허용된다. 보통 농부들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농장 경영에 관해 배울 수도 있다. 물론 단순 농업 노동자라면 직업학교까지 마칠 필요는 없다. 덴마크에서는 모두 17개의 농업 직업학교가 운영되고 있다.
따라서 ‘농업 경영전문가 과정’은 ‘덴마크 농부 수업’을 국제화시켰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학생들은 2년간 크게 농학과 경영학의 두 가지 분야를 집중적으로 배우게 된다. 1학년 때는 생물학과 경제학 경영학 마케팅 등을, 2학년 때는 그동안 배운 내용을 토대로 학생 각자가 주제를 선택해 심화 학습한다.
특히 ‘농업 경영전문가 과정’ 졸업생들은 세계무대에서 활동하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학생들의 영어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졸업생들은 국가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일해야 하므로 영농과 사회, 문화, 국제관계 등의 다양한 주제를 영어로 익히게 된다.
영어교재들도 각국의 문화 차이를 미리 익힐 수 있는 내용을 주로 담고 있다. 중국 출신의 1학년생 왕펑(王鋒·25) 씨는 “덴마크의 높은 농업수준뿐만 아니라 영어를 집중적으로 익힐 수 있어 좋다”며 “졸업 후 귀국하면 영어 실력을 토대로 괜찮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고 기대했다.
농업 경영전문가 과정 1학년 중 선택과목으로 조경을 고른 학생들이 달룸 농업경영대의 부속농장에서 교수의 지도 아래 현장 실습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달룸 농업경영대
학교에서는 이론 위주로 공부하지만 1, 2학년 말에 각각 한 차례씩 덴마크의 농업 관련 기업에서 실습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된다. 약 2개월간 실습할 기업을 선택할 때는 학생들의 의사가 거의 전적으로 반영된다. 학교는 기회를 제공할 뿐이다. 케냐 출신의 1학년생 폴 은잠와야(33) 씨는 “실습 과정에서 익힌 여러 가지 노하우를 조국에 돌아가 농장을 경영하면서 활용하고 싶다”고 말했다.
‘농업 경영전문가 과정’에서는 1, 2학년 말에 각각 한 차례씩 시험을 치른다. 1학년 말 시험 때 적어도 6점(최고는 13점) 이상을 얻지 못하면 2학년 과정으로 넘어갈 수 없다. 2학년 말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더 열심히 할 것인가, 아니면 집으로 돌아갈 것인가”라는 ‘최후통첩’을 받은 뒤 두 차례 더 응시 기회를 제공받는다. 만약 세 차례 시험을 모두 통과하지 못하면 1년간 다시 수강해야 한다.
강의는 모두 영어로 진행되기 때문에 입학하려면 토플 성적이 560점(CBT 220점 상당)을 넘어야 한다. 지난해 9월 시작된 2005∼2006학년도까지는 유럽지역 출신이 아닌 학생들은 2년 과정의 학비로 입학금 1만 크로네(약 156만 원)만 내면 됐다. 덴마크 출신 학생들은 아예 학비를 내지 않는 게 원칙. 그러나 2006∼2007학년도부터는 덴마크 정부가 외국인 학생들을 위한 지원을 없애 총학비가 9만 크로네(약 1400만 원)로 크게 오른다. 졸업생들은 농업 컨설턴트 또는 농업생산 관리자 등으로 활동하거나 개발도상국의 농업계획에 참여하기도 한다.
오덴세=이진 기자 leej@donga.com
▼“영업-수출분야 실무교육으로 현지 취업 기회도”▼
프리츠 한센(56·사진) 티트겐 경영대(마케팅·조직관리) 교수는 달룸 농업경영대 ‘농업 경영전문가 과정’의 특이한 점을 소개했다. ‘농업 경영전문가 과정’을 달룸과 티트겐 두 대학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점이다.
캠퍼스가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두 대학은 ‘농업 경영전문가 과정’ 수업 중 생물학과 농학은 달룸의 교수들이, 경영학과 경제학은 티트겐의 교수들이 각각 강의를 맡는다. 이 때문에 외부인에게는 달룸과 티트겐이 마치 한 학교인 것처럼 비친다. 수업은 달룸 구내의 강의실에서 진행된다.
한센 교수는 ‘농업 경영전문가 과정’이 해외 진출에도 적극적이라고 설명했다. 2월에는 중국 상하이(上海)를 방문해 9월부터 있을 상하이 농업대와 교수진 상호파견 문제를 매듭지었다고 설명했다. 상하이 농업대와는 2003년부터 제휴해 학점을 상호인정하고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하지만 한국과는 거의 교류가 없는 상태다. 20여 년 전쯤 낙농을 배우러 한국인들이 다녀간 것이 전부라는 설명이다.
한센 교수에게 2006∼2007학년도부터 외국인 학생들의 학비 부담이 아주 커졌다고 지적하자 옆자리에 있던 아스게르 클라우센 달룸대 부학장은 “영국은 학비가 더 비싸다”고 응수했다.
하지만 한센 교수는 이내 덴마크 정부의 방침에 따른 것으로 어쩔 수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앞으로 시간이 흐르면 유럽지역 학생들도 학비를 내야 할 것”이라며 “현재 외국인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 제도는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농업 경영전문가 과정’ 졸업생들 중 일부는 덴마크에 남아 취업할 수 있는 기회를 찾는다고 설명했다. 졸업생들은 출신 국가에 돌아가서 일하더라도 자신들의 조국과 덴마크 사이에서 농업 부문의 ‘가교 역할’을 하는 사례가 아주 많다고 소개했다.
또 그는 덴마크의 교육여건이 생소해 ‘농업 경영전문가 과정’에 곧바로 진학하기가 망설여지는 외국인 학생들은 달룸대에 개설된 5개월 기간의 ‘1-B과정’을 먼저 이수하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센 교수는 20여 년간 덴마크의 여러 기업에서 영업과 수출업무를 담당하다 10년 전 티트겐대에 합류해 ‘농업 경영전문가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그는 “내 경험을 학생들에게 전수하고 싶었던 것이 직업 전환의 이유였다”고 말했다.
오덴세=이진 기자 lee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