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도 사람이다. 고기도 먹고 싶고 놀고도 싶다. 부모형제가 소중하고 친구를 만나면 즐겁고 신난다. 이걸 남편들이 알아야 한다. 남편도 사람이다. 만능 인간이 될 수 없고 힘들다. 하고 싶은 말도 많고 사랑도 받고 싶다. 이걸 아내들이 알아야 한다. 남자가 싫은 건 여자도 싫고 여자가 좋은 건 남자도 좋다. 남자와 여자는 상당히 다를 줄 알고 있지만 사실 인간이라는 넓은 틀에서는 하나다. ―본문 중에서》
난 여성학자 오한숙희는 잘 모른다. 그 대신 인간 오한숙희는 조금 안다. 20대 후반쯤부터 알고 지냈으니 남들이 모르는 속사정과 행적 정도는 꿰뚫고 있다. 세월을 통해 확인한 그의 인간성은 한마디로 당차고 올곧다는 점이다. 오한숙희의 말이라면 ‘믿을 만하다’는 신뢰는 여기서 출발한다.
그는 가끔 TV에 등장해 부부 문제를 다룬다. 볼 때마다 찔리는 부분이 많다. 등장 사례의 이름만 바꾸면 이건 완전히 내 얘기다. 진단에 따르면 난 심각한 결격 사유를 지닌 남편족의 표본에 해당한다.
이 땅 온 여성의 대변자로 불릴 만한 오한숙희의 구구절절 입바른 소리엔 할 말을 잃는다. 텔레비전을 보고 나면 심기가 몹시 불편하다. 창피한 일을 들켜 버린 황당함 때문이다.
오한숙희의 수다는 TV를 넘어 책에서도 계속 이어진다. 이 땅 대부분의 남자 여자가 술 퍼마시며 혹은 질질 짜며 친구들에게 넋두리했음 직한 ‘어찌하오리까?’의 구체적 대답을 족집게 도사처럼 집어낸다. 게다가 남자와 여자, 연인과 부부 문제의 진단과 해법만이 전부는 아니다. 결국 본질은 인간 경영, 세상 보듬기의 구체적 행동 요령을 제시하고 있다. 세상사 몰라 못하는 일이 어디 있을까마는 오한숙희의 말대로 실천한다면 ‘평안의 상태’는 따 놓은 것과 같다.
이 책은 부부보단 외려 연인이 참고해야 할 내용이 많다. 연애의 감정과 맹목적 사랑에 빠져 자칫 흘려버리기 쉬운 남자와 여자의 속내를 들여다보게 하는 힘 때문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선배의 애정 어린 조언을 듣는 셈 치고 가볍게 접근하되 묵직한 메시지를 건져 올려야 한다.
세상사 모든 일은 반복된 연습으로 익숙해지고 세련되어 간다. 남자와 여자의 관계도 마찬가지라 말한다. 좋은 습관이 좋은 삶으로 이어질 개연성은 너무나 높다. 처음엔 잘되지 않을지 모른다. 점차 익숙해지고 자연스러운 관계의 모드(mode)를 만드는 상승의 효과가 중요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제5부 ‘기성복 부부? 맞춤복 부부?’에 이르러서는 큰 공감이 인다. 한 번뿐인 인생, 자기만의 방식으로 잘살라는 얘기다. 지지리 궁상처럼 보여도 색깔 있는 삶은 포장된 행복보다 우월하다는 그의 믿음이 잘 드러나 있다.
자기를 강제하는 외압은 어디에도 없다. 모든 것은 자신에게서 비롯된다는 확신으로 관계를 이끌어 가라는 행동지침은 철학적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 대목이야말로 젊은 세대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부분이라 믿는다. 자기 몸에 맞춘 맞춤복처럼 편안하고 개성 넘치는 관계를 만들 때 나머지 부분은 저절로 따라오지 않던가. 둘만의 관계에서조차 세상의 룰을 끌어들이는 것은 처량하고 한심할 뿐이다.
아! 그러나 걱정되기 시작한다. 과연 나는 잘하고 있는 것일까?
“너나 걱정하세요!” 이쯤에서 텔레비전 CF에 나오는 신구의 모습이 떠오른다.
윤광준 사진작가 ‘잘 찍은 사진 한 장’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