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집 키우기냐, 아니면 아이디어냐.
출판계가 고민에 빠졌다. 책 읽는 사람이 갈수록 줄어드는 시대. 한국 출판계가 회생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 한국출판인회의 강의실에서는 출판인들의 모임인 ‘책을 만드는 사람들’ 주최로 출판의 미래에 대한 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는 출판의 앞날이 출판사 대형화에 달려 있다는 주장과 여전히 기획력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팽팽히 맞섰다.
규모를 강조한 이는 최봉수 웅진씽크빅 출판부문 대표. 그의 주장은 한마디로 “연매출 1000억 원대의 출판사가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가장 규모가 큰 출판사는 지난해 400억 원가량의 매출을 올린 민음사와 그 계열사들이다. 단행본 매출액 기준 상위 5개 출판사의 시장점유율이 영미권은 70%, 일본은 40% 이상인 반면 한국은 5% 안팎이다.
최 대표는 “거대 자본이 출판의 다양성을 해친다고 주장하는 분들께 이상적인 출판의 다양성을 구가하는 나라가 과연 어디인지 묻고 싶다”며 “한국 메이저 출판사들의 시장점유율은 시장 질서를 해칠 정도의 수준에서 한참 멀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더는 ‘가난한 분투에 박수 보내는’ 출판업을 후배에게 강요해선 안 된다”며 “5년 내 연매출 1000억 원대 출판사가 1, 2개 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기획력을 강조한 휴머니스트 김학원 대표는 “한국 출판의 미래는 1000명의 전문 편집자에게 달려 있다”고 주장했다. 역대 흥행 1위에 오른 영화 ‘왕의 남자’가 연매출 1위의 대형 영화사 작품이 아니듯 출판의 미래도 대형 출판사에 달려 있지 않다는 주장이다.
김 대표는 “한국 출판의 역사는 지식의 독과점 체제에 대항한 단행본 출판의 역사”라고 정의했다. 광복과 함께 창업한 을유문화사는 한국 문화의 새로운 기초를 형성했고 1970, 80년대 창비, 한길사는 민주주의를 여는 지식을 제공했으며 1990년대 사계절, 보리는 미래 교육의 새로운 상징이었다고 김 대표는 주장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출판을 자본력의 힘으로 사고하지 않았다”는 것.
다양성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렸다. 최 대표는 “‘문사철’(문학 역사 철학)만 출판물이고 토익 토플서 여행가이드북 컴퓨터 서적은 출판의 다양성과 상관없느냐”고 반문하면서 출판의 엘리트주의에 일침을 놓았다.
반면 김 대표는 “출판의 핵심은 ‘깊이’이고 깊이야말로 다양성 창출의 기초”라며 “사유가 깊고 넓고 다양한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최 사장은 “출판의 미래를 위협하는 것은 새로운 인재가 수급되지 않는 구조”라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386세대가 주도해 온 현재 출판구조와 관념은 미래형 미디어 문화에 익숙한 차세대 인재를 품기에는 아직도 폐쇄적”이라고 지적했다.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