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자유를 박탈당한 미래사회를 배경으로 인간의 항쟁을 담은 영화 ‘브이 포 벤데타’. ‘벤데타(Vendetta)’는 ‘피의 복수’라는 뜻이다. 사진 제공 올댓시네마
영화 ‘브이 포 벤데타(V for Vendetta)’에 대해 가장 갖기 쉬운 오해는, 이 영화를 ‘매트릭스’ 시리즈를 연출했던 워쇼스키 형제가 감독한 영화로 믿는 것이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브이…’는 제임스 맥티그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정확하게 말해, 워쇼스키 형제는 영화의 각본과 공동제작을 맡았다.
그럼에도 ‘브이…’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역시 ‘워쇼스키 형제’가 아닐 수 없다. 이 영화는 1981년 영국에서 흑백만화로 탄생해 1990년에 컬러버전으로 몸집을 불린 동명의 그래픽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지만, ‘워쇼스키 형제’와 거의 동일시되는 영화 ‘매트릭스’가 품었던 철학적 사유와 설정이 상당 부분 포개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브이…’가 어떤 영화인지 80% 이상 짐작할 수 있다. 첫째는 암울한 미래 세계를 배경으로 한 영화일 거고, 둘째는 희망이 거세된 세상을 뒤엎을 한 명의 이단아 혹은 메시아(매트릭스의 ‘네오’ 같은)가 존재할 것이며, 셋째는 세상을 전복시키는 근원적인 에너지는 믿음과 사랑에서 나올 것이고, 넷째는 무지하게 말(言)이 많은 영화일 거란 사실이다.
미국이 벌인 제3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 미국이 몰락한 뒤 영국인들은 서틀러 의장의 철권통치 아래 통제된 삶을 산다. 어느 날 이니(내털리 포트먼)는 정권의 하수인인 핑거맨들에게 봉변 당할 뻔하지만, 얼굴에 마스크를 쓴 한 남자가 홀연히 나타나 그녀를 구해 준다. ‘브이(V)’로 불리는 그는 국영방송을 장악해 국민을 상대로 “자유를 되찾자”고 연설하고 다음 해 11월 5일 총궐기하자는 메시지를 전한 뒤 사라진다.
‘브이…’는 제법 의미도 깊이도 스타일도 재미도 있지만, 문제는 그게 고유한 의미도 깊이도 스타일도 재미도 아니라는 점에 있다. 그건 이 영화가 (굳이 ‘매트릭스’를 들지 않더라도) 영화나 소설, 역사 속의 이런저런 텍스트들을 끊임없이 떠올리게 만드는 기시감(旣視感·어디서 본 듯 느껴지는 것)을 불러오며 독창적인 쇼크를 주지 못하는 탓이다. 브이의 외모는 영락없이 ‘조로’를 연상시키고, 인간의 정신적 쾌감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예술작품과 음악이 금지되는 미래 세계에 대한 아이디어는 영화 ‘이퀼리브리엄’을 생각나게 한다.
영화는 “사람들의 두려움이 이성과 상식과 저항의지를 없앤다”처럼 철학 냄새를 폴폴 풍기는 수사(修辭)들로 차고 넘친다. 하지만 이런 말들이 전달하는 ‘절대 권력에 대한 투쟁’이나 ‘민중봉기’와 같은 주제의식은 인물의 내적 고민을 투사하기보다는 지적 허영이 넘실대는 철지난 나르시시즘(자기애·自己愛)에 가깝다.
브이가 철권 통치자들에게 복수의 칼을 날리며 떠들어대는 ‘공평’ ‘진리’ ‘정의’ ‘신념’ ‘사랑’ 같은 형이상학적 단어들이 안겨주는 기대감에 비해, 정작 그가 숨겨 온 복수의 동기는 ‘일신상의 사유’에 불과하다. 세상만사가 그렇듯, 이 영화도 말을 더 줄이고 그만큼 행동(액션)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시종 얼굴을 보여 주지 않는 외로운 영웅 브이를 연기한 배우는 매트릭스에서 네오를 괴롭히던 ‘스미스’ 역의 휴고 위빙. 콧소리가 섞이고 지적인 냄새를 풍기는 그의 발음은 여전히 일품이다. 17일 전 세계 동시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