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지리아 관료가 유학 시절 사귄 인도네시아 관료를 찾아갔다. 호화 주택 앞에 외제차가 번쩍였다. 박봉에 웬 돈이냐고 묻자 친구는 고속도로를 가리키며 말했다. “10% 뗐지.”
얼마 후 인도네시아 친구가 나이지리아를 찾았다. 대저택 앞에 외제차 10대가 늘어서 있었다. “고속도로는 없던데…” 두리번거리는 그에게 나이지리아 친구는 열대우림을 가리키며 “100%!” 하고 외쳤다. 길도 안 놓고 개발자금을 꿀꺽했다는 얘기다.
이런 농담이 나도는 나이지리아에 노무현 대통령이 방문했다. 인도네시아와 나이지리아는 산유국, 넓은 땅, 많은 인구에 군사독재와 종족 갈등이라는 공통점이 있어 종종 비교된다. 1970년만 해도 둘 다 1인당 국민소득 200달러가 안 됐으나 2004년 인도네시아는 1140달러, 나이지리아는 390달러다. 인도네시아는 석유 판 돈을 생산에 투자했지만 나이지리아는 부패로 날린 탓이다.
1970년 254달러였던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2004년 1만4162달러가 됐다. 노 대통령이 이집트 언론에 말한 대로 땅 좁고 자원은 빈약해도 수출지향적 경제정책과 성장동력산업 육성, 인적 투자에 힘쓴 덕이다.
나이지리아에서 노 대통령은 “우리 경제발전 경험을 공유하고 개발 원조를 2008년까지 3배 늘리는 ‘아프리카 개발을 위한 한국 이니셔티브’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개발시대의 ‘압축성장’ 때문에 우리나라에 양극화가 생겼다고 주장하는 곳이 청와대였다. 이제 아프리카도 노 대통령이 앞장서는 개발 때문에 양극화가 심해질까 봐 쓸데 없이 걱정된다.
더 걱정스러운 건 퍼주기 원조가 착한 의도와 달리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아프리카 인구의 절반이 빈곤층이지만 해외 원조가 부족해서랄 수는 없다. 유럽이 미국의 마셜플랜으로 혜택 본 것보다 아프리카가 받은 지원이 훨씬 크다. 제대로 결실을 보았다면 잠비아의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는 돼야 한다는 게 세계은행 분석이다. 2004년 이 나라 국민소득은 450달러였다.
이유는 간단하다. 기후와 너무 많은 천연자원, ‘제국주의 잔재’ 등을 댈 수는 있지만 부패하고 무능한 정권보다 더 큰 이유는 없다. 불리한 여건을 딛고 이만큼 성장한 우리 역사가 그 증거다. 케냐의 경제학자 제임스 시크와티는 “해외 원조는 썩은 정치꾼 배만 불릴 뿐”이라며 “거저 주는 돈이 시장(市場)과 민간자율을 죽인다”고 했다.
노 정권의 이니셔티브가 더 겁나는 건 ‘큰 정부’를 찬미하는 시대착오적 신념 때문이다. 정부가 경제발전을 주도해야 한다는, 1980년까지 학계를 풍미했던 개발국가 이론의 실패작이 아프리카다. 정부가 커질수록 성장률이 떨어진다는 연구는 수도 없이 많다. ‘경제자유지수’가 157개국 중 146위, 정부가 경제를 못살게 구는 것으로 이름난 나이지리아에 대고 정부를 더 키우라고 한다면 남들이 웃는다. 오죽하면 미국 헤리티지재단이 “제멋대로의 세금과 규제 때문에 나이지리아에 투자한 외국 기업은 봉”이라고 했겠나.
다행히 2003년부터 이 나라는 세계적으로 효과가 입증된 경제정책, 즉 시장을 키우고 재정균형과 법치를 중시하는 개혁에 들어갔다. 결과는 불투명하다. 7년 전 군사독재를 종식시켰던 민선(民選) 대통령이 내년 대선 전 개헌해 장기집권을 할 조짐이라 개혁이 계속될지 의문이다. ‘민주화 세력’도 정권만 잡으면 어디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아프리카 원조를 늘린다는 건 사회복지를 확대하자는 구호처럼 아름답다. 그러나 ‘있는 나라’의 빈자에게서 세금 뜯어 ‘없는 나라’의 부자만 신나게 만드는 원조는 안 하느니만 못하다. 북한에 퍼주기가 김정일 정권만 살리듯, 우리 국민 부담 늘려 엉뚱한 데 허비할까 무섭다.
노 대통령의 순방을 소개한 국정브리핑에 한 누리꾼은 무엄하게도 “아프리카에서 오지 마시라”고 썼다. 여기 붙은 댓글 중 하나는 이랬다. “아프리카는 뭔 죄를 지었다고….”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