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마스쿨의 교장 겸 교사인 엘리사베트 아울레다 씨(오른쪽)가 실습수업 중인 학생에게 창의력을 한껏 발휘해 보도록 조언하고 있다. 재학생 100여 명의 작은 학교이지만 예술의 향기가 가득한 바르셀로나를 동경한 끝에 찾아온 일본과 유럽 지역 학생도 많다. 바르셀로나=김정안 기자
누군가가 그랬다. 스페인 하면 바르셀로나이고, 바르셀로나 하면 예술의 도시라고.
세계적인 화가 파블로 피카소가 유년 시절을 보낸 곳이자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의 창작 무대였던 바르셀로나. 이런 까닭에 에스퍄냐(스페인) 미술의 막을 연 카탈루냐 지역의 중심이기도 한 이곳 사람들의 예술에 대한 자긍심은 무척 높다.
기자가 방문한 도자기공예 전문학교, ‘포르마스쿨’은 바로 바르셀로나의 에나모레츠가에 자리 잡고 있다.
지난달 21일 비 내리는 오후에 찾아간 포르마스쿨에서는 한창 수업 중이었다.
“상상력을 발휘해 보아요, 보는 이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도록….”
교장 겸 교사 엘리사베트 아울레다(44) 씨는 작업 중인 학생 알렉산드로 바스켈(15) 군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바스켈 군 앞에 놓인 작품은 회오리바람을 타고 올라오는 듯한 형상의 동물 머리 모양.
한참 고민하던 그는 “원래 독수리를 만들 생각이었는데 생각을 바꿔 코브라 같기도 하고, 독수리 같기도 한 상상 속의 동물을 제작해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포르마스쿨에서 중시하는 것은 바로 이 같은 창의력. 실습 과정에서도 학생들에게 실패를 거듭해도 좋으니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어 보라고 가르친다.
포르마스쿨은 사립학교다. 1970년 세워져 학원 형식으로 운영되다 1983년 카탈루냐 주 정부로부터 공식 학교 인가를 받았다. 여러 면에서 기존 사립예술학교와 다르다.
무엇보다 여느 대학 같은 입학 기준이나 연령 제한이 없다.
중학교를 졸업한 만 13세 이상이면 입학할 수 있다. 재학 중 시험도 없다. 학과 과목이나 스케줄도 본인 선택에 맡긴다.
유럽의 학교는 대부분 9월에 시작되지만 이곳에서는 수시 입학이 가능하다.
아울레다 교장은 “개인 능력과 투자한 시간에 따라 졸업 시기가 달라진다”면서 “6개월이 걸릴 수도 있고 6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입학 시기도 개인 사정에 따라 정해지고, 학업 과정도 조정할 수 있기 때문에 휴학 또한 필요치 않다.
하지만 졸업은 쉽지 않다. 아울레다 교장은 “졸업장을 받으려면 우리 학교만의 독특한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공식적인 졸업 시험이나 작품전은 없다. ‘그렇다면…’ 하고 어리둥절해하는 기자에게 그는 “입학 직후부터 학생들의 수업 능력, 작품을 대하는 행동을 꾸준히 관찰한다”면서 “그 같은 작업 태도가 작품에 반영된다”고 말했다. 한순간의 평가가 아니라 평소 만든 작품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졸업 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포르마스쿨에서는 특별한 이론이나 예술사 등은 가르치지 않는다.
아울레다 교장은 “우리 학교는 4년제 미술대학도, 전문 예술고등학교도 아니다”면서 “직접 보고 만지고 실패하면서 배워 나가는 실습교육에 중점을 둔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특색은 세계 전역에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학생이 찾아온다는 것. 수업은 스페인어로 진행되지만 영어로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수업이라기보다 개인별 교습 형식을 취하고 있어 언어에 대한 부담이 적다는 것이다. 연령 제한이 없기에 뒤늦게 공부에 뜻을 둔 도예 지망생들이 유럽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찾아온다.
수업료는 매주 15시간 수업을 기준으로 월 258유로(약 30만 원).
등록비(72유로)는 따로 내야 한다. 졸업 후 진로는 다양하지만 스페인 출신의 경우 상당수가 바르셀로나 지역 초중등학교 특별활동 교사로 취직한다. 포르마스쿨 졸업장만 있으면 바르셀로나 시 교육 당국이 정식교사는 아니지만 공예 부문 특별활동 지도교사 자격을 인정해 준다.
도자기공예 가게를 차리는 경우도 많다. 최근 바르셀로나 시는 도자기공예 가게를 내려면 이 같은 공예가 자격을 갖추도록 제도화했다.
해외 유학생의 경우 통상 스페인 체류 기간이 제한돼 있어 현지 고용 가능성은 희박하다. 따라서 현지 취업보다 귀국해서 작품 활동을 계속하는 경우가 많다. 도자기공예 과정 외에도 조각과 데생, 스케치 강의도 있다. 도자기공예의 맛만 느끼려는 사람들을 위한 24시간 단기 코스도 있다.
포르마스쿨의 재학생은 100여 명. 한국 학생은 없었다.
바르셀로나=김정안 기자 credo@donga.com
▼아울레다 교장“이론중시 미술大와 달라… 만들면서 배울뿐”
세계 각국에서 모인 포르마스쿨의 학생들이 각자의 독특한 아이디어를 살려 작품을 만드는 데 열중하고 있다. 수업에는 여러 명이 동시에 참석하지만 창의성을 존중해 개인별 교습 형식을 취하고 있다. 바르셀로나=김정안 기자
포르마스쿨 학생 가운데 상당수는 고등학교나 대학에 적을 둔 채로 이 학교에서 공예 수업을 받고 있다. 그런 면이 여느 직업학교와 다르다.
교장 엘리사베트 아울레다 씨에게 궁금한 점 몇 가지를 물었다.
―학생들의 수준과 진도가 다르다면 개인 지도는 거의 불가능하지 않나.
“강의당 15명을 넘지 않게 하고 있다. 또 일주일에 3번 정도 개인 면담을 하는 시간이 있다.”
―한국 학생의 경우 졸업에 대한 기준도 없이 막연히 이곳에 와서 공부하기엔 무리가 있을 것 같은데….
“이곳 학생들이 학교를 졸업하는 데 걸리는 기간은 평균 3년이다. 더 걸리는 경우도 있지만 거의 개인 사정 때문이다. 한국 학생은 아직 없지만 상당수의 일본 학생이 공부하고 있다. 비자 문제 때문에 외국 학생의 경우 보통 매주 15시간, 6개월가량 집중적으로 공부한 뒤 현지 학생보다 일찍 졸업한다. 6개월 체류는 학교 측이 보장해 준다. 이변이 없는 한 그 정도 기간이면 대다수가 졸업할 수 있다.”
―전문 예술고등학교나 4년제 미술대와 다른 느낌이 드는데….
“그렇다. 우리는 직접 만지고 제작하는 과정, 기술을 가르친다. 이론과 예술사 등은 강의하지 않는다. 때를 놓친 이들에게도 문을 열어 놓고 있으며 실용성과 기술을 중시한다. 인터넷 강의도 있다. 각자 선택에 따라 교육자, 예술인, 기술자의 길로 나갈 수 있다.”
―졸업 후 취업률은 어느 정도인가.
“정확한 수치는 없지만 50% 정도가 교사 혹은 공예 관련 상점 등에서 일하고 나머지는 취미 차원에서 도자기공예를 계속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바르셀로나=김정안 기자 cred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