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애인이던 때에는 마라톤은 사람이 할 운동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장애인 김황태 씨. 그는 마라톤을 통해 삶의 활력을 찾았다. 박영대 기자
“백만불짜리 내 두다리가 자랑스럽다”
“달릴 때마다 살아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12일 ‘2006 서울국제마라톤대회 겸 제77회 동아마라톤대회’에 출전한 김황태(金晃泰·29·인천런너스클럽) 씨는 양팔이 없는 1급 장애인이다.
김 씨는 이날 10번째로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해 3시간 5분 5초의 기록을 세웠다. 목표였던 ‘서브 스리(3시간 미만)’를 달성하진 못했지만 ‘죽을힘을 다해’ 뛰어 자신의 최고 기록(3시간 18분)을 13분이나 앞당겼다. 그는 “시민들이 응원해 줘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김 씨는 2000년 8월 전선 가설 작업 중 2만2000V 고압선에 감전돼 양팔을 잃었다. 당시 의사는 “생명을 건진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그를 위로했다.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마라톤이었다. 병원에서 늘어난 체중을 줄이고 싶었지만 불구의 몸으로 할 수 있는 운동이 생각나지 않던 터에 직장 상사의 권유로 2003년 2월부터 달리기를 시작했다.
김 씨는 “사고 전인 2000년 서울국제마라톤대회에 참가해 하프코스를 완주했지만 당시 마라톤은 사람이 할 운동이 아니라고 생각해 그만둔 적이 있다”며 웃었다.
마라톤은 생활의 중심이 됐다. 김 씨는 팔이 없는 탓에 균형을 잡기가 쉽지 않았지만, 몸이 뒤뚱거릴수록 더 열심히 달려야 한다며 자신을 채찍질했다. 이를 악물고 연습한 끝에 8개월 만에 풀코스를 뛸 수 있게 됐다.
김 씨는 매년 10개가 넘는 대회에 출전하고 있다. 덕분에 체중 감량에도 성공하고 건강도 크게 좋아졌다. 그는 서울국제마라톤을 위해 인천 문학운동장에서 매일 하루 15km 이상 달리며 ‘서브 스리’의 각오를 다졌다.
결승점에서 김 씨를 기다리던 부인 김진희(29) 씨는 누구보다도 자랑스러운 남편을 안으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고교 때 남편을 만난 부인 김 씨는 “장애인은 안 된다”는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2002년 12월 집을 나와 살림을 차렸다. 그는 혼인신고만 한 채 살면서도 한결같이 남편의 두 팔이 돼 줬다.
남편 김 씨가 달리는 중 건네주는 물을 마시지 못할 때 가슴이 아프다는 부인 김 씨는 “마라톤에서 기쁨을 찾는 남편을 볼 때마다 기운을 낸다”며 웃었다.
청계천 따라…
도심의 푸른 물결을 따라 달린다. 2006 서울국제마라톤대회 겸 제77회 동아마라톤대회에 참가한 마라토너들이 청계천가를 따라 긴 행렬을 이루며 뛰고 있다. 특별취재반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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