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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박영균]내기골프 즐기는 ‘강남 좌파’

입력 | 2006-03-13 03:05:00


우리나라에서 잘나가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재작년쯤엔 가장 얄밉게 잘나가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노무현 대통령 찍고 미국으로 이민 간 사람’이라고 대답하는 우스갯소리가 유행했다. 국내 사정에 신경 쓰지 않고 경제적으로도 비교적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나온 말로 짐작된다.

요즘엔 잘나가는 사람들을 ‘강남 좌파’라고 부른다. 아마도 생각은 좌파적인데 생활수준은 강남 사람에 못지않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 듯하다. 골프를 너무나 좋아하다가 탈이 난 이해찬 총리가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까.

지난달 발표된 고위 공직자 재산 내용을 보면 이 총리와 비슷한 강남 좌파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 부자들을 부동산 투기꾼으로 몰아 공격하던 정권의 핵심 실세들 중에도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적지 않다.

강남 좌파의 첫째 유형은 부동산 부자이다. 스스로가 부동산을 포함해 재산이 많은데도 다른 부동산 부자들을 투기꾼으로 비난하면서 자신은 결백하다고 주장한다. 자신이 갖고 있는 땅은 노후에 대비한 전원주택용이고 다른 사람들이 산 땅은 투기라고 우긴다. 그 말을 누가 믿어 줄까. 이 총리가 소유한 안산 땅이나 청와대 모 수석비서관의 땅이 투기인지 아닌지는 국민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8·31 부동산 종합대책’을 주도했던 공직자의 상당수가 강남 일대의 고가 아파트를 갖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본인들의 강남 아파트와 오피스텔은 투기가 아니고 다른 평범한 사람들의 아파트는 투기로 보였던 것일까.

두 번째는 해외유학파다. 반미자주를 외치면서도 자식들은 미국에 유학 보내는 사람들이다. 다른 사람들이 자식을 외국에 유학 보내는 것은 문제이고 본인 자식들의 유학은 괜찮다고 주장한다.

세 번째는 골프나 요트를 즐기는 고급 스포츠 애호가형이다. 본인들이 즐기는 고급 스포츠는 건강을 위한 투자이고 남이 하는 스포츠는 과시형 사치라고 여긴다.

이들의 부동산 소유와 해외유학 자체를 비난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식구가 늘어나고 아이들이 크면 집을 늘려 가고 싶은 것은 강북 사람이건 강남 사람이건, 좌파이건 우파이건 다 같지 않은가.

청와대의 어느 수석보좌관처럼 공직에서 물러나자마자 미국에 있는 자식을 보러 가는 사람들을 탓할 의도도 없다. 잘사는 나라를 만들려면 똑똑한 사람들이 해외로 나가 첨단 지식과 기술을 배워 와야 할 게 아닌가. 오히려 해외로 많이 나가라고 장려하고 싶다.

다만 겉 다르고 속 다른 이들의 언행은 고쳐야 한다. 이 총리의 ‘내기골프’를 계기로 골프나 부동산 소유, 해외유학을 죄악시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버릴 때도 됐다. 정치자금을 제공한 기업인들과 몰래 골프를 치면서 남들을 비판할 수 있을까.

이젠 전교조 선생님들도 필요하다면 자식들을 해외로 유학 보낼 수 있어야 한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 정치인들이 고층 아파트에 살고 해외유학을 보낸들 떳떳하다면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해외 좌파는 이미 달라지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부의 대변인을 하던 청년이 미국 예일대 학생으로 변신하는가 하면 과거 중동의 전사들이 비즈니스맨으로 바뀌고 있다. 중국이 미국의 유명 사립학교와 대학을 유치하고 북한이 경영대학원을 만들겠다고 나서는 세상이다. 중남미에 좌파 정권이 잇달아 들어선다고 하지만 과거와는 다른 실용형이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중국 학생보다도 시장경제를 믿지 못하고 ‘못살아도 평등하게 사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더 높다는 조사 결과가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비뚤어진 좌파교육의 결과 아닌가. 국내 좌파는 아직도 우물 안 개구리식으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 보기 바란다. 잘나가는 강남 좌파부터 달라지기를 기대한다.

박영균 편집국 부국장 parky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