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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인준 칼럼]傲慢(오만)에 무너지나

입력 | 2006-03-14 03:03:00


일인지하(一人之下)의 권력을 휘둘러 온 이해찬 국무총리가 불법정치자금 제공, 가격담합, 주가조작 등의 꼬리표가 붙은 기업인들과 부산을 오가며 골프를 쳐 왔고 이들을 총리공관에까지 초대해 오찬을 베풀었다.

이 총리는 작년 8·15민족축전에 참가한 북한대표단 앞에서 “총리공관은 민주화 투쟁의 결과로 얻은 것”이라고 ‘역사성(歷史性)’을 강조했다. 산업화 시대의 총리들은 공관을 불법 점거라도 했다는 듯이 말한 것부터가 독선(獨善)이었다. 백번 양보해 그의 인식이 옳다고 치자. 그렇다면 자신이 어려울 때 감싸주고 투쟁을 도와주던 원로들을 공관에 가끔 초대해 지혜를 빌려 보았던가. 거꾸로 이 총리는 지난해 10월 김수환 추기경이 국가 정체성의 혼란을 걱정하자 “종교지도자가 정치적 발언을 한 의도를 모르겠다”고 쏘아붙였다.

총리실은 이 총리가 리더십 붕괴를 자초한 바람에 대혼란에 빠졌다. 이 총리가 2004년 6월 취임 후 총리실 요직에 속속 포진시킨 ‘정치적 친위그룹’인 이른바 ‘이해찬 사단’ 20여 명도 우왕좌왕하고 있는 듯하다. 총리실의 2인자로 부처 간 정책조정자 역할을 해야 할 조영택 국무조정실장은 열린우리당의 지방선거 ‘차출’에 걸려 자유롭지 못하다. 국무조정실 인원만도 2003년 말 307명에서 501명으로 늘어났지만 조직 상층부가 이런 상황이니 정상가동이 되겠는가.

노무현 대통령이 총리를 곧바로 경질하더라도 후임이 안착하기까지는 혼란이 상당 기간 계속될 것이다. 만약 이 총리를 유임시킨다면 후유증은 훨씬 더 클 것이다. 오늘의 노 대통령은 1999년 이른바 ‘옷 로비 의혹사건’ 와중에 몽골을 방문했다 막 돌아온 김대중 당시 대통령과 비슷한 처지다. 그때 DJ는 귀국 회견에서 “마녀사냥하지 말라”며 의혹을 일축했고, 부인이 의혹에 연루됐던 김태정 검찰총장을 법무부 장관에 기용했다. 이렇게 오기(傲氣)에 찬 선택은 DJ의 레임덕(권력누수)을 재촉했다.

지금 정부에서 사고(事故)지대는 총리실만이 아니다. 지방선거용 개각의 대상이 된 부처들은 헌 장관, 새 장관, 그 사이에 낀 차관이 기형적으로 동거하고 있다. 법으로 임기를 명시해 놓은 공정거래위원장 자리는 9일 이후 공석인 상태다. 이런 자의적(恣意的)이거나 편의적인 인사(人事)가 국정의 안정성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관기(官紀) 문란을 부채질한다. 인사권을 ‘무거운 책임’으로 여기지 않고 고유권한으로만 생각하는 지도자는 오만(傲慢)의 대가를 치르기 십상이다.

명색이 부총리가 이끄는 재정경제부와 교육인적자원부도 과연 정상가동 중인지 의심스럽다. 한덕수 부총리는 최근의 집값 급등에 대해 8·31 부동산 종합대책의 효과가 곧 나타날 것이라고 또 변명했지만 서울 강남 아파트값은 그 대책의 장래 변수까지 이미 반영해서 뛰고 있는 줄 알아야 한다. ‘8·31 훈장’은 두고두고 코미디로 남을 것이다. 김진표 부총리는 “등산은 되고 골프는 안 되느냐”고 썰렁한 개그나 하고, 이기우 차관은 골프게이트의 한복판에 있으니 국민이 교육부를 어떻게 볼지 상상이 어렵지 않다.

청와대 홈페이지도 가관(可觀)이다. 대통령의 확고한 국정 방향인지, 하급 비서관이나 행정관들의 즉흥적 생각인지 분간할 수 없는 주장이 넘쳐난다. 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비판을 역(逆)비판해 주는 비서들이 고마울지 몰라도 국민은 그런 청와대 홈페이지를 보면서 정부의 수준을 읽는다. 미국 백악관 홈페이지나 일본 총리관저 홈페이지를 방문해서 청와대 홈페이지에서처럼 설치는 비서관, 행정관이 있는지 살펴볼 일이다.

지난 3년간 경쟁국들과 비교해 지진아(遲進兒) 같은 저성장을 기록하고도 ‘우리 경제는 안정적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청와대 홈페이지에 버젓이 올려놓고 있으니 많은 국민이 정부에 대한 기대를 접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청와대 홈페이지도 관기 문란의 한 현장이다.

역시 대통령부터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변해야 정부의 비정상 상태를 일부라도 교정할 가능성이 생길 수 있다. ‘국면전환용 정치는 안 한다’는 의미 없는 명분을 앞세워, 전환이 급한 국면을 마냥 방치한다면 이는 무능과 무책임만 확인시킬 뿐이다. 우선은 노 대통령의 골프 정국 해법을 지켜보고자 한다.

배인준 논설실장 inj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