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극장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이 12년째 운행 중이다. 이달 말이면 3000회 공연 기록을 세운다. 이는 대학로 소극장 공연예술계에서 특별하고 이례적인 일이다.
우리의 공연예술계는 항상 새로운 것을 원하는 유목민적 습성이 있다. 초연 작품에 대한 비평가와 매스컴의 주목은 과분할 정도이지만, 다시 막이 오를 때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냉담해진다. 그들의 관심은 어느새 또 다른 새로운 작품을 누가 먼저 발견하느냐에 닿아 있다.
그래도 재공연까지는 작품이 어떻게 수정되고 보완되었는지 관심을 보인다. 하지만 매년 공연이 계속되면 무관심의 늪에 빠져든다. ‘또 하느냐, 새로운 작품이 그렇게 없느냐’는 냉소도 듣게 된다.
소극장 공연예술계가 새롭고 실험 지향적이고 도발적인 것은 좋다. 하지만 너무 그렇다 보니 완성도를 높이거나 관객과 만날 시간조차 제대로 갖지 못하기도 한다.
그래서 무제한적으로 쏟아지는 대학로 소극장 연극은 일종의 인해전술적인 연극판을 형성한다. 100편의 연극 중에 한두 명의 가능성 있는 극작가와 연출가와 배우를 발견하기 위하여 그렇게 무제한적으로 쏟아 내는 셈이다.
그렇게 발견된 한두 편의 연극도 생명력이 오래가지 못한다. 세상의 관심은 발견된 극작가와 연출가와 배우에게 있지 정작 발견된 연극에는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 주지 않는다. 고작해야 몇 줄의 리뷰와 기사, 그리고 올해의 우수작 정도로 대접하고 나면 그 다음 순서로 넘어가 버린다. 그 다음 순서는 발견된 한두 명의 극작가 연출가 배우에게 새로운 작품을 연거푸 맡기면서 그들을 위험한 상태로 빠뜨린다. 채 자라지도 않은 싹이 너무 빨리 각광받고 너무 빨리 잊혀지면서 또 다른 새로운 인물을 찾아 나서게 되는 것이다.
이 피곤한 유목민적 속성. 그래서 우리의 소극장 공연예술계는 대부분의 작품이 흐르는 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망각의 쓰레기더미로 밀려나 버리는 것이다.
그러면서 “볼만한 연극이 없다”고 개탄한다. 볼만한 연극을 계속 볼 수 없게 만들면서 볼만한 연극이 없다고 개탄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이제 이런 피곤한 새로움으로의 질주를 반성하면서 볼만한 것들을 가려내어 계속 볼 수 있게 만드는 일이 중요한 것이다. 만약 지난 30년간 공연된 대학로 소극장 연극 중에서 정말 볼만했던 연극들이 지금도 공연되고 있다면 볼만한 연극이 없다는 말이 나올 것인가.
그러나 소극장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12년째 대학로 소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다. 대학로에서 10년 이상 버틴 유일한 소극장 뮤지컬 레퍼토리다. 그래서 대학로의 연극인들은 김민기 형에게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별로 그에게 말을 걸지 않기 때문에 그는 항상 대학로의 외로운 섬처럼 존재하고 있다. 나 또한 그를 나의 애창곡 ‘아침이슬’을 지은 작사·작곡가이며 가수로 기억하고 싶을 때가 있었다. 그는 이미 ‘아침이슬’로 우리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은 음유시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음유시인이 소극장 연극의 메카 대학로의 연극 가족이 되어 대학로 소극장가의 고전이 될 수 있는 레퍼토리 하나를 우뚝 세워 놓은 것에 대해 ‘축하한다. 고생했다. 고맙다. 계속 가라!’는 말이라도 걸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제 우리도 10년 정도의 시간은 버틸 수 있는 대학로 소극장 레퍼토리를 만들어 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이것이 바로 대학로가 살길이고, 그 길트기의 맨 앞에 김민기 형과 학전의 ‘지하철 1호선’이 위치하고 있는 셈이다.
“축하한다. 고생했다. 고맙다. 계속 가라!”
이윤택 극작가·연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