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G에 대한 외국자본의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가 관심을 끄는 가운데 한 자산운용사가 ‘백기사 펀드’라는 것을 만들었다. 개인투자자의 돈을 모아 M&A의 위협으로부터 국내 주요 기업을 지킨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주식시장의 의견은 두 가지로 나뉜다. 국내 주요 기업을 외국자본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는 장치가 부족한 상황에서 좋은 대안이라는 옹호론이 있는 반면 외국자본에 대한 배척으로 비쳐 한국 증시에 대해 거부감을 일으킬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투자 대상 기업의 경영권을 지킨다는 명분에 충실하다 보면 가입자의 이익 극대화를 추구한다는 펀드 수익성이 희생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M&A는 기업의 가치를 높이고 주가를 올리는 순기능을 할 때도 많은데 투자대상 기업의 경영권 방어에 나서는 것이 과연 펀드 가입자에게 얼마나 이익을 안겨 줄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현실적인 한계도 있다. 공모펀드는 한 종목에 10% 이하의 자산만 투자할 수 있다. 언제든지 적대적 M&A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포스코의 시가 총액은 20조 원이 넘는다. 백기사 펀드가 2조 원의 자금을 모아 2000억 원을 투자한다 해도 확보할 수 있는 지분은 1%에 그친다. 주요 기업들이 외국자본의 M&A 위협을 받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국내 주식자산이 너무 적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증시의 평균 외국인 지분은 약 25%. 40%가 넘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지난해 한국에는 주식자산을 크게 늘릴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기대를 모았던 적립식 펀드 세제 혜택이 무산됐고 퇴직연금의 주식 편입비율은 40% 이하로 제한됐다.
아직 한국인은 한국 증시를 믿지 않는다. 그러나 주가는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하기 마련이다. 주식투자의 기본은 ‘경제가 성장하는 한 장기적으로 주가는 오른다’는 믿음이다.
한 국내 자산운용사 사장은 “우리가 믿지 않는 국내 주식의 가치를 믿고 산 외국인에게 ‘기업 사냥꾼’이라는 비난을 던질 자격이 있느냐”고 말했다.
진정한 토종자본의 힘은 급조된 백기사가 아니라 주식시장에 대한 신뢰에서 나와야 한다.
손택균 경제부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