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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기자의 무비홀릭]‘음란서생’의 시각적 쾌감

입력 | 2006-03-16 03:05:00


《영화 ‘음란서생’의 진정한 주인공은 빛과 미장센(등장인물이나 사물의 배치 등 종합적 화면구성)이다. ‘스캔들’의 각본을 맡았던 김대우 감독은 자신의 연출 데뷔작에서 시각적 쾌감의 극치를 보여준다. 태양광과 인공조명을 통해 빛을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는가 하면, 치밀하게 계산된 화면 배치로 관객의 미감(美感)을 자극한다. ‘음란서생’이 이야기상의 일부 허점에도 불구하고 고혹적인 매력을 갖는 건 이 때문이다. ‘음란서생’에서 빛의 사용과 미장센이 탁월한 대목을 꼽아본다.》

① 어둠을 헤치고 장명등(長明燈)을 든 조선시대 여인들이 등장하는 영화 도입부. 그들이 장옷 사이로 얼굴만 빠끔 내민 채 음란서적을 구입하기 위해 분주하게 발길을 재촉하는 순간=인공조명의 냄새를 의도적으로 풍기는 달빛을 통해 온몸을 가린 아낙네들의 움직임을 물화(物化)시킨다. 아낙네들이 저마다 숨기고 있는 억압된 육욕을 시각화하는 효과를 내는 것. 아, 여인들의 밀물 같은 욕망이여.

② 선비 윤서(한석규)가 온몸을 얻어맞아 초주검이 된 음란서적 불법유통상 황가(오달수)의 등에 뜸을 떠주는 순간=3등분된 화면에 주목할 것. 주인공 윤서를 중간에, 황가를 오른편에 둔 뒤 햇빛이라는 또 다른 ‘인물’을 왼편에 등장시킨다. 좌측 상단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햇빛이 윤서의 갓을 통과한 뒤 황가의 등까지 따스하게 도달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황가의 등에서 확산되기 시작한 뜸 연기가 햇빛과 몸을 섞는 매혹적인 순간.

③ 왕의 후궁인 정빈(김민정)이 불법 복제된 서화에 대한 수사를 윤서에게 의뢰하는 순간=정빈의 머리 위로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 강렬하면서도 우아한 역광은 왕실의 권위와 여인(정빈)의 신비로움을 이미지화한다.

④ 정빈이 처음으로 윤서의 품에 안긴 순간=윤서의 왼 어깨를 짚은 정빈(아니 김민정)의 손가락이 만들어내는 아찔하도록 섬세한 곡선은 그 자체로 화면의 장식미가 된다. 섬섬옥수(纖纖玉手)의 성적 매력이 발휘되는 순간.

⑤ 정빈이 하녀로부터 마사지 받으면서 앞에 놓인 새장을 바라보는 순간=정빈은 자신을 둘러싼 음탕한 소문의 정체를 이실직고하라면서 하녀를 옥죈다. 8각형 창, 이 창을 통해 들어오는 황금빛 햇살, 이 햇살을 받아 역시 황금색으로 빛나는 침구, 정빈의 매끈한 몸, 화사한 병풍이 빚어내는 밀도 높은 미장센.

⑥ 윤서가 쓰는 음서(淫書)에 대해 윤서와 황가가 이야기를 주고받는 뒷모습=문틀 속에 ‘가둬놓은’ 두 남자의 뒷모습은 액자 속 그림을 보듯 안정되고 장식적인 동시에, 시대의 무게에 질식된 인간의 모습을 형상화하는 심리효과를 낸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