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가 한국 경제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 경제가 어떤 구조적인 불평등 상태로 고착되어 가고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것은 야당이 부정한다고 사라지는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청와대 홈페이지에 있는 양극화 기원에 대한 해설을 보면 불안하다. 청와대와 여당이 제시하고 있는 처방도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한국의 경제 상황을 정확히 말하자면 양극화라기보다는 이중경제(dual economy)다. 양극화가 소수 부자와 다수 빈곤층 간의 대립구도를 상정한다면 이중경제는 비교적 다수의 경제적 강자와 역시 다수인 약자들의 계층 양분을 의미한다. 이중경제화는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남미 국가들이 이미 수십 년 동안 경험해 왔던 것이다.
이중경제화란 경제의 구성요소가 크게 공식부문과 비공식부문으로 나눠지고, 이 두 부문 간의 격차가 구조화되는 현상을 말한다. 경제사회적 혜택이 집중되는 공식부문에는 공공부문, 대기업부문, 금융부문 등이 포함된다. 공식부문은 높은 임금과 직업적 안정성, 사회보장 혜택을 고루 누리는 것은 물론 막강한 노조도 있다. 일부 남미학자들은 공식부문의 노조와 노조원들을 노동 귀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에 비해 비공식부문에는 중소기업 노동자, 영세 자영업자, 도시 서비스부문 등이 포함되는데 이들은 낮은 소득과 직업적 불안정 상태에 있으며 사회보장 혜택도 취약하다. 그들은 조직적인 노조도 대부분 갖지 못한다.
그런데 이중경제에서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비공식부문에서 공식부문으로의 진입이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공식부문의 노동자들은 노조의 힘을 통해 그들의 기득권을 유지 강화해 가지만, 이들의 임금과 혜택이 향상될수록 기업의 채산성은 악화되고 정규직 고용의 확대는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이다.
한 국가경제가 이중경제의 늪으로 빠지는 데는 정부의 포퓰리즘적 경제정책이 가장 큰 원인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포퓰리즘 권력은 대규모 투자 확대와 내수 진작, 그리고 공공복지 정책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거품경제를 만들고 일정 기간 후 거품이 사라지는 과정에서 경제위기를 초래한다. 이때 대기업과 공공부문은 각종 재정적 투입을 통해 살아남는 반면, 중소기업과 도시 서비스부문은 열악한 처지로 몰리면서 점차 비공식부문으로 전락하게 된다.
한국경제가 외환위기 사태를 전후하여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이중경제가 남미에서 전개된 것과 대단히 유사한 과정을 겪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공식부문에 진입하는 것은 하나의 특권이 되었다. 9급 공무원 시험의 경쟁률이 100 대 1을 넘겼고, 대기업 노조가 취업자리를 놓고 장사를 벌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의 상황이 남미와 다른 점은 많은 국민이 남미의 전철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공식부문 노조가 사회적 약자를 자처하면서 진보와 정의를 외치지만, 그들이야말로 기득권 세력이며 노동시장의 정상적 작동을 막고 있는 집단임을 감지하고 있다. 또 사회복지 프로그램의 확대가 구조화된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지 못할 것임을 인식하고 있다.
양극화가 아닌 이중경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하는 방도는 기업 유치와 기업 경쟁력 향상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다. 이것이 영국과 미국이 1980년대 경제위기에서 헤쳐 나온 길이요, 1980년대 말 최악의 상황에 빠졌던 아일랜드가 불과 10년 만에 일류경제로 도약한 비결이다.
이중경제화된 한국 경제의 앞날을 예견하기는 쉽지 않다. 야당의 무지, 여당의 정략적 태도를 보건대 정치의 포퓰리즘적 상황은 이중경제를 더욱 심화시키거나 적어도 지속시킬 가능성이 적지 않다. 정부가 경제적 양극화라는 정치적 수사로 이중경제화 현상을 호도하면서, 일시적인 인기를 위해 포퓰리즘적 정책을 강화한다면 한국 경제의 남미화는 현실이 될 수도 있다.
권오혁 부경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