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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하준우]참말과 거짓말의 차이

입력 | 2006-03-17 03:09:00


1999년 5월 중순 벨기에 안트베르펜 부근 한 술집. 손님 4명이 코카콜라를 마시고 탈이 났다. 벨기에와 프랑스에서 코카콜라를 생산하는 코카콜라 엔터프라이즈(CCE)는 진상조사에 나섰지만 제품에 아무 이상이 없다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며칠 뒤 벨기에 보르넴의 한 학교에서 코카콜라를 마신 학생 39명이 병이 났다. CCE는 일부 제품을 회수했다. CCE 고위 경영자인 지제르벨드는 벨기에 보건부 장관을 만나 제품에 이상이 없다는 점을 설득하려 했다. 그는 장관이 대화 도중 또 다른 사고를 전화로 보고받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 사고는 계속됐다. 프랑스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터졌다.

첫 사고가 발생한 지 한 달쯤 지난 6월 16일 당시 코카콜라 회장은 사과 성명을 냈다. 그리고 유럽 5개국에서 1400만 상자의 제품을 회수했다. 이 사고는 113년의 역사를 지닌 코카콜라의 가장 심각한 위기로 발전했다.

타이레놀을 생산하는 존슨앤드존슨의 위기 대응방식은 달랐다.

1982년 가을 미국 시카고에서 타이레놀을 복용한 시민 7명이 숨졌다. 존슨앤드존슨은 즉시 위기관리팀을 만들고 사망 원인에서부터 제품의 생산 및 유통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또 특별전화선을 설치해 언론의 모든 문의에 대해 성실히 답변했다. 고객에게 끼친 피해에 대해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경영철학을 실천한 것이다.

누군가 제품 유통과정에서 청산가리를 넣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존슨앤드존슨은 모든 제품을 회수하고 이미 제품을 구입한 사람은 새 제품으로 바꿀 수 있도록 했다. 이 사건에 대해 90%의 소비자가 존슨앤드존슨 측에 책임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존슨앤드존슨은 유통과정에서 이물질을 넣지 못하도록 제품의 용기를 바꾸고, 이 같은 포장을 의무화하는 법률을 제정하기 위해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로비를 벌였다.

코카콜라와 존슨앤드존슨의 사례는 마케팅 업계의 고전에 속한다. 이들 사례는 위기가 발생했을 때 신속히 대응해 모든 진실을 털어놓고 후속 조치로 신뢰를 얻는 방식과 임기응변식 미봉책을 거듭해 위기를 키우는 방식의 차이를 보여준다.

이해찬(李海瓚) 전 국무총리의 ‘3·1절 골프 파동’은 코카콜라의 사례를 생각하게 한다. 골프를 함께 친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골프 회동 사실마저 부인하기도 했다. 이들은 하루도 못 가 자신이 한 말을 뒤집기도 하고, 입을 열 때마다 말이 달라 온 국민을 헷갈리게 했다.

거짓말에는 소극적 거짓말과 적극적 거짓말이 있다. “기억나지 않는다”며 진실을 감추는 것은 소극적 거짓말이다. 진실을 조작하거나 속이면 적극적 거짓말이 된다. 이런 거짓말에는 상황을 판단해 유리하게 끌고 가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사리 분별 능력을 갖춘 골프 회동자의 적극적 거짓말은 사태를 위기로 몰고 갔다. 국민의 불신을 키운 결말은 이 전 총리 등 공직자의 사퇴였다.

아니다. 결말은 나지 않았다. ‘참말’을 아직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검찰 수사 등 강압적 방법보다는 관련자들의 솔직한 이야기로 진실이 밝혀지길 바라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비록 늦었지만 ‘참말’로 한 조각의 신뢰나마 살려야 한다. 소를 잃었더라도 외양간을 고쳐야 한다.

하준우 사회부 차장 haw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