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 진출의 주역인 ‘라이언 킹’ 이승엽. 그는 “미국이 나를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이 가장 기분 좋다. 3년 전 메이저리그 진출을 시도했을 때는 대우를 못 받아서 정말 섭섭했는데 이번 대회를 통해 좋은 이미지를 얻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동아일보 자료 사진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일전이 열린 16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 애너하임 에인절스타디움. 이승엽(李承燁·30·요미우리)은 승리가 확정되자 평소와는 달리 마음껏 기쁨을 발산했다. 동료들을 끌어안고, 하이파이브를 하고, 펄쩍펄쩍 뛰며 운동장을 돌았다. 그에게 마음의 상처를 안겼던 미국과 일본에 진 빚을 갚았기 때문이었을까.
이승엽은 “미국이 저를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이 가장 기분 좋습니다. 3년 전 메이저리그 진출을 시도했을 때는 대우를 못 받아서 정말 섭섭했거든요. 이번 대회를 통해 좋은 이미지를 얻게 돼 기뻐요”라고 말했다.
이번 대회는 ‘이승엽을 위한 무대’라고 할 만하다. 한국이 2라운드까지 6연승을 하는 동안 그는 홈런만 5방에 10타점을 올렸다.
14일 경기에서 1회 홈런을 맞은 미국의 좌완 특급 돈트렐 윌리스(플로리다)는 “이승엽이 아주 잘 쳤다”며 완패를 인정했다. 거포 1루수 마크 터셰어러도 “한국 팀에서 이승엽이 가장 인상에 남는다. 아주 좋은 타격을 보였다”며 칭찬했다.
급기야 애너하임의 빌 스맨턴 단장은 16일 지역언론인 ‘오렌지카운티 레지스터’와의 인터뷰에서 “이승엽의 타격을 좋아했다. 아니 그의 모든 것을 좋아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제안을 하지 못했다”며 후회하기에 이르렀다. 2003년 이승엽이 미국에 와 애너하임 등 몇몇 구단과 접촉했지만 헐값의 계약조건을 내걸었다 놓친 데 대한 아쉬움을 나타낸 것이다. 미국 포수 마이클 버렛도 “이승엽이 왜 메이저리그에서 안 뛰는지 의문”이라고 맞장구쳤다.
이처럼 이승엽은 그동안 미국시장에서 제대로 대접을 못 받았다. 2003년 삼성에서 이승엽은 한 시즌 아시아 홈런 신기록인 56개의 홈런을 때린 후 해외 진출을 선언했다. 그러나 갈망했던 메이저리그에는 진출하지 못하고 일본 롯데 구단으로 갔다. 이에 대해 이승엽은 “당시 미국 팀들이 내 입으로 말하기도 싫을 정도로 초라한 조건을 제시했기 때문”이라고 털어놓았다.
일본의 벽도 만만찮았다. 전혀 다른 야구 스타일에다 집요하게 약점을 물고 늘어지는 일본 투수들 앞에 이승엽은 2군 추락의 수모를 맛보기도 했다.
이승엽은 “당시엔 야구를 그만둘까 진지하게 고민했다”고 회고했다. 시즌 막판에는 친정팀인 삼성으로의 복귀가 물밑에서 진행되기도 했다는 것.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딱 1년만 더 일본에서 야구를 하자며 이를 악물었습니다. 시즌이 끝난 뒤 거의 하루의 휴식도 없이 훈련에만 매진했죠. 손바닥 껍질이 벗겨지고 굳기가 여러 번이었습니다.”
이승엽은 이듬해 30홈런을 날리며 체면치레를 했다. 일본시리즈에서도 3홈런을 치는 맹활약을 하며 올해 초에는 최고 명문 구단이라는 요미우리로 팀을 옮겼다. 이번 대회에서는 그동안 일본에서 받은 설움을 단번에 날려 보내는 홈런을 때렸다. 5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일본과의 아시아 예선에서 8회 결승 역전 2점 홈런을 친 것.
“일본에서 정말 많이 배웠어요. 근력을 키웠고, 투수와의 수 싸움도 늘었고, 타격 기술도 몰라보게 좋아졌어요. 그때의 고생이 없었으면 아마 이번 대회에서의 이승엽도 없었을 겁니다.” 일본과의 경기 후 이승엽은 이렇게 말했다.
한국은 물론 미국 일본에서 쏟아지는 관심 때문에 부담스럽지 않을까?
“사실 너무 힘들어요. 부담도 너무 크고…. 못 치면 비난이 저한테 쏟아질 거잖아요. 물론 지금처럼 잘 치면 영웅이 되기도 하겠지만…. 지금까지의 결과가 좋을 뿐이죠. 이런 상황을 즐기는 걸로 보일 수도 있지만 결코 그렇진 않습니다. 하지만 이를 감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프로 선수입니다. 프로라면, 한 분의 팬이라도 나를 지켜보고 응원을 한다면, 그분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승엽이 이렇게 길게 대답하는 일은 흔치 않다. ‘프로 선수로서의 마음가짐’에 대해 오래 고민하고 나름대로 정리한 흔적일까.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이승엽이 바라보는 미래는 어떤 것일까. 이승엽은 “아직도 메이저리그에 가고 싶다”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일본에서 뛰면서도 그 꿈을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일단 올해 요미우리에서 확실한 모습을 보여줘야겠죠.”
현재로선 이승엽의 꿈이 이뤄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 WBC는 30개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다른 팀 선수들을 관찰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평소 이승엽에게 관심을 갖고 있던 구단은 물론 그를 몰랐던 구단들도 새롭게 이승엽에 대한 스카우팅 리포트를 쓰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1년여 후 이승엽은 당당한 메이저리거로서 에인절스타디움이나 준결승이 열리는 샌디에이고의 펫코 파크를 누비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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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너하임=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이승엽의 야구와 삶▼
2004년 시즌이 끝난 뒤 대구에 있는 이승엽의 집에 가 본 적이 있다.
어머니 김미자(58) 씨는 투병 중이었다. 2002년 1월 뇌종양 수술을 받고 의식을 잃은 채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아들은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그날 있었던 일을 두런두런 얘기했다. 어머니는 물끄러미 듣고만 있을 뿐이었다. 얘기를 이해하는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아들은 어리광을 섞어 가며 다정하게 이야기를 계속했다.
외출을 하게 되자 “엄마, 나 잠깐 나갔다 올게. 밥 잘 챙겨 드시고 잘 쉬고 있어”라고 말했다. 대답은 말이 아닌 어머니의 눈을 보고 알아들었다.
모자의 의사소통은 4년째 이런 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WBC에 참가하는 바람에 일본 미국을 돌면서도 이승엽은 하루가 멀다 하고 집에 국제전화를 한다. 그리고 수화기를 통해 아들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야구 선수 이승엽은 독종이지만 인간 이승엽은 따뜻하다.
이승엽은 최정상급의 스포츠 스타지만 다른 사람을 대할 때도 항상 겸손하다. 그래서 한국에 있을 때부터 기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이승엽은 한번 안면이 있는 사람에게는 먼저 인사를 할 줄 아는 선수다.
선수 취재가 어려운 일본에서도 그의 태도는 한결같다. 그 때문에 일본 기자들은 다른 어떤 일본 선수보다 이승엽을 인간적인 선수라고 평가한다.
홈런을 쳤을 때조차도 자신의 기쁨을 표현하기보다는 홈런을 맞은 투수들을 존중할 줄 안다. 이승엽의 홈런 소감에는 “상대 투수가 실투를 한 것 같다”는 말이 거의 빠지지 않는다.
높은 위치에서 좋은 평판을 듣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이승엽이 진정한 최고인 까닭은 뛰어난 실력에 따뜻한 인간미까지 겸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너하임=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