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을 잡을 수 있다면 몸을 사릴 이유는 없었다.
다이빙을 한 뒤 땅바닥에 부딪치는 순간 엄청난 충격이 찾아왔지만 글러브 안에 들어간 공을 확인하면 통증은 곧 기쁨으로 변했다.
타구를 쫓아 이리저리 뒹굴다보면 유니폼은 어느새 먼지투성이. 그래도 훌훌 털고 일어서 다시 꿋꿋하게 수비 자세를 갖췄다.
한국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6연승을 질주하며 4강 쾌거를 이룰 수 있었던 데는 이처럼 승리를 향해 몸을 아끼지 않으며 탄탄한 수비를 펼친 야수들의 활약이 큰 힘이었다.
한국은 일본과의 준결승을 포함해 WBC 7경기에서 단 한 개의 실책도 하지 않았다. '실책 제로'는 WBC 출전 16개국 가운데 유일하다. 큰 경기일수록 수비 하나가 승부에 직결된다는 야구 속설처럼 철벽 수비를 승리의 발판으로 삼은 것.
전 세계 야구팬이 지켜보는 가운데 안정된 수비는 일부 해외 스타로 주목받던 한국 야구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성과였다.
특히 '국내파'가 중심이 된 한국의 수비 라인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 없었어도 묵묵히 제몫을 다하며 연전연승의 밑거름이 됐다.
병역비리 파문에 연루되기도 해 한때 출국정지처분까지 받았던 우익수 이진영(SK)은 속죄라도 하 듯 일본과의 1,2차전에서 잇달아 눈부신 수비를 펼쳤다. 비록 타율은 1할대에 그쳤어도 몸을 날려 안타성 타구를 잡아내는가 하면 절묘한 홈 송구로 상대 득점을 막아내 번번이 기자회견 때 마다 초청받는 인기스타로 떠올랐다.
이진영은 19일 일본과의 준결승에서도 오가사와라의 대형 타구를 펜스와의 충돌을 의식하지 않고 껑충 뛰어올라 잡는 묘기를 보였다.
유격수 박진만도 대만과의 예선에서 승리를 굳히는 호수비를 펼친 데 이어 번번이 내야 안타성 타구를 아웃으로 돌려세워 이번 대회 최고 내야수라는 칭찬을 들었다.
한국 대표팀 선발 라인업 10명 가운데 연봉 최하위 이범호(한화·1억6000만 원)와 9위 김민재(한화·1억9000만 원)도 자물쇠 수비로 이름을 날렸다.
이들 수비수들의 활약은 강타자와 에이스 등이 주목받는 한국 야구의 풍토 속에서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는 활력소였다.
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