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국제매장디자인대상(ISDC)에서 ‘혁신적 외관 디자인상’을 받은 서울 강남구 논현동 인피니티 매장. 사진 제공 인피니티
《인비저블(invisible·보이지 않는) 디자인과 공간 커뮤니케이션….
이 콘셉트는 매장 자체가 소비자와 통하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라는 것을 말한다.
공간의 보이지 않는 손이 고객을 사로잡는 것이다.
백화점을 비롯해 화장품 자동차 등을 취급하는 매장들은 고객들의 신뢰와 기대를 얻기 위한 ‘숨은’ 디자인을 지니고 있다.
제품을 노골적으로 부각시키지 않으면서 은연중에 브랜드의 호흡을 소비자들에게 전한다.
고객들은 모르는 사이에 여기에 이끌리고 동화되기도 한다.
디자인 섹션 7회에서는 인비저블 디자인의 사례를 전한다.》
○ ‘위’로 모시겠습니다.
수입자동차 매장의 격전지인 서울 강남구 논현동 도산공원 앞 사거리.
지난해 9월 이곳에 새로운 콘셉트로 문을 연 일본 닛산의 프리미엄 브랜드 인피니티 자동차 전시장이 화제를 낳고 있다.
통상 1층에 두는 전시 승용차를 건물의 꼭대기인 5, 6층에 진열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행인들이 쉽게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하는 기존 자동차 매장의 콘셉트를 깬 파격 디자인이다. 궁금하면 들어오든지, 밖에서 보려면 5층과 6층을 우러러보라는 콘셉트로, 어떻게 보면 ‘불친절’ 디자인의 사례로도 통할 만하다.
이곳은 일본 닛산이 ‘프리미엄’을 강조한 새로운 매장 콘셉트인 ‘인피니티 전시장 환경 디자인 계획(IREDI)’을 세계에서 처음으로 적용한 공간이다. 이 매장은 지난달 미국 매장계획학회(ISP)와 ‘비주얼 머천다이징+스토어 디자인(VM+SD)’ 잡지사가 공동 주관하는 ‘2005 국제 매장 디자인 대상(ISDC)’에서 ‘혁신적 외관 디자인상’을 받았다. ‘ISP-VM+SD’ 디자인 대상은 매년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18개 부문 200여 후보작 중 최우수 제품에 주는 상.
이 매장을 공동 디자인한 브랜드 및 전략 전문 회사 ‘립핀캇 머서’사(社)의 피터 딕슨 디자이너는 “인피니티 브랜드의 핵심인 모던과 럭셔리를 동시에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라며 “인피니티 매장은 자동차 세일즈맨이 단순히 ‘판매’하는 개념이 아니라 예술품을 감상하듯 여유롭게 살펴보라는 메시지와 철학을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봄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문을 연 ‘파크 하얏트 서울’ 호텔도 내부 구조가 독특하다. 입퇴실 수속을 하는 프런트 데스크와 로비가 건물의 최고층인 24층에 있다. 그 옆에는 넓은 통유리로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실내 수영장을 설치했다. 호텔에 투숙하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구름 위의 호텔’ ‘지상의 낙원’을 연상케 하는 이미지를 전달하겠다는 디자인이다. 인피니티나 파크 하얏트 호텔의 내부 디자인은 기존 상식의 틀을 깬 것으로 먼저 고객의 호기심을 유발한 뒤 새로운 의미를 만끽하도록 하는 커뮤니케이션 방법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 ‘안’으로 초대합니다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즐기도록 하는 데 판타지처럼 달콤한 소재는 없다.”
최근 화제가 되는 화장품 매장 두 곳은 상상을 현실처럼 느끼게 해 주는 공간 디자인으로 소비자들의 공감을 자아내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울 중구 명동에 있는 에뛰드의 ‘에뛰드 하우스’가 대표적인 사례. 4층 건물의 전체 외벽부터 동화 속 핑크빛 공주의 집을 떠올리게 한다. 건물 내부는 제품을 판매하는 매장이 아니라 공주가 쓰는 소품들이 집안 곳곳에 놓여 있다는 착각이 들도록 꾸몄다. 화장대 욕실 침실을 실제 가구나 그림으로 표현한 뒤 이에 어울리는 화장용품들이 ‘있어야 할 곳’에 놓여 있다.
고객들은 마치 공주가 되어서 집에 들른 듯 이곳저곳에 배치된 상품을 거부감 없이 집어 들게 된다. 특히 집안 구조를 층별로 세분한 뒤 재현함으로써 실제 공간별 상황별로 필요한 물건을 연상해 구매하도록 유도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
에뛰드 홍보실 예수경 팀장은 “에뛰드 하우스의 디자인 콘셉트는 소녀들이 동경하고 가 보고 싶어 하는 예쁜 방을 구현하고자 했다”며 “동화 속 집안을 구경하는 것처럼 흥미와 재미를 함께 주는 동시에 세면대에서는 세안용품을, 화장대에선 색조화장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 친숙하고 실생활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한 곳은 강남구 압구정동에 있는 아모레퍼시픽의 ‘디 아모레 갤러리’. 3년간 130억 원을 투자해 완성한 지상 3층, 지하 1층 규모의 이 갤러리는 인천국제공항 설계에 참여한 프랑스 건축가이자 최근 홍익대 건축대 초대 학장으로 취임한 장미셸 빌모트 교수의 ‘작품’이다.
이곳 디자인의 특징은 화장품을 보석처럼 전시해 놓은 진열대와 건물 구조. 밝고 깨끗한 느낌의 진열대와 투명 아크릴함 속에 가지런히 놓인 화장품들은 모두 값비싼 보석의 느낌을 자아낸다.
건물은 1, 2층 중앙홀을 뚫어 복층 구조로 만들었다. 마치 고급 저택의 파티에 초대받은 느낌이 들도록 2층에서 투명유리 난간 아래로 1층 진열대를 바라볼 수 있도록 설계했다. 이곳도 고객들이 고급 귀금속 매장에 온 것처럼 상품을 직접 골라 체험해 볼 수 있도록 했다. 태평양 홍보팀 신민호 대리는 “제품 체험을 통해 느끼는 품질 실험보다 고객이 어떤 느낌과 생각으로 매장을 이용하고 있는가가 공간 디자이너들의 관심”이라고 말했다.
글=김재영 기자 jaykim@donga.com
그래픽=이진선 기자 geranu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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