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멘스의 모바일 TV. 지멘스, 아우디, 벤츠, BMW, 브라운 등 독일의 세계적 기업들이 내놓은 제품은 한결같이 기능적이고 깨끗한 이미지를 자아낸다. 사진 제공 지멘스
“독일 디자인의 특징은 무엇인가요”라고 독일 디자이너들에게 물어보면 누구나 같은 대답을 한다. “기능성과 간결함이죠.”
영국의 디자인 역사가 페니 스파크는 저서 ‘컨설턴트 디자인’에서 독일은 과학의 이름으로 디자인을 판다고 했다. 독일 디자인의 특징은 기술이 뒷받침된 덕분에 산업과 예술의 조화에 의한 ‘기계 미학’으로 요약된다.
실용성과 기능성에 바탕을 둔 장식 없는 ‘엄격한’ 형태를 독일에서는 “아름답다”고 말한다. 이런 바우하우스 전통을 이어받은 독일의 대표 디자인으로 전자제품, 자동차, 정밀기기 등 하이테크 제품을 꼽을 수 있다.
아우디, 벤츠, BMW, 브라운, 아에게(AEG), 보슈, 지멘스…. 기능적이고 깨끗한 이미지가 바로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는가.
○필요할 때만 나타나라-기능, 단순, 질서
독일 디자인은 세 개의 뿌리에서 성장했다. 바로 독일공작연맹과 바우하우스, 울름조형대. 특히 바우하우스는 독일 디자이너들과의 대화에서 빠지지 않는다.
독일공작연맹은 20세기 초 산업과 예술의 접목을 위해 구성된 조직으로 제품 표준화와 대량생산, 영국의 모던 디자인과의 조화를 꾀했다. 바우하우스는 표현주의 예술 공예에 바탕을 둔 교육기관이다. 이 학교는 기계주의 철학을 예술과 디자인으로 업그레이드시켰다.
울름조형대는 독일공작연맹과 바우하우스의 계승자로 1951년 설립됐다. 산업과 예술의 접목에 다시 인간의 심리(心理)적 요소를 반영하기 위한 목적을 내걸었다.
독일공작연맹은 모던 디자인 운동의 실질적인 모체이고, 이 운동의 이념을 교육 현장에서 실천한 것이 바우하우스다. 그러나 바우하우스가 1933년 나치에 의해 문을 닫으면서 독일에서 전위적인 디자인 활동은 멈췄다. 교수와 학생들은 흩어졌고 히틀러는 통치 양식으로 신고전주의를 내세우면서 모더니즘 디자인을 법으로 금지했다.
모던 디자인은 전쟁이 끝난 한참 뒤인 50년대 초에 다시 소생했다. 이때 설립된 울름조형대는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디자인 개념으로 ‘일상문화’를 내세웠다. 디자이너가 문화의 전달자임을 강조한 것이다.
이 대학은 가전제품회사 브라운과 손잡고 ‘사용’이라는 관점에서 제품을 개발했다. 바우하우스를 거쳐 울름조형대까지 흘러온 모던 디자인의 이상이 브라운의 제품을 통해 구현된 것이다. 이 학교는 68년 폐교됐으나 그 엄격성과 순수성, 기능주의 정신은 세계 디자인 회사들에 이어지고 있다.
독일 디자인의 특성은 스타일에서 쉽게 드러난다. 매우 실질적이고 견고하며 고도의 기능주의에 입각해 기능과 형태가 합리적이고 조화를 이루고 있다. 스위치에서 나사 하나까지 어느 하나 불필요한 것 없이 깔끔하게 정리돼 있다.
독일 디자이너 디터 람스는 이렇게 말했다.
“제품은 좋은 영국 하인과 같은 것이다. 필요할 때 제자리에 있어야 하며 필요없을 때 뒤로 숨겨져야 한다.”
○차별화된 지역 디자인 센터
독일에서 디자인 진흥 역사는 전후사(戰後史), 특히 경제 재건 과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독일은 이 과정에서 국가 경쟁력을 회복하는 방안의 하나로 디자인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모색해 왔다.
그러나 지방색이 강한 독일은 범국가적으로 디자인 정책을 관장하지 않는다. 지역 디자인센터들이 서로 다른 특성에 맞는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펼치고 있다.
‘독일 디자인 카운슬(German Design Council)’의 보고서에 따르면 디자인기관, 연구소, 대학, 디자인 회사 등 디자인 관련 기구는 모두 750여 개에 이른다.
이 가운데 13개 지역 디자인 센터가 디자인 진흥의 중심 기구다. 디자인 카운슬은 연방 기구이지만 이들을 총괄하지 않는다. 지역 센터는 독특한 역사와 전통, 고유한 제도와 재정 구조 등을 가지고 있으며 활동 양상도 서로 다르다.
슈투트가르트 디자인 센터는 지역 경제 발전 프로그램의 하나로 운영 재원을 주 정부에서 지원받고 있으나 하노버나 에센디자인센터는 대부분 자체 재원으로 충당하며 일부 보조금만 받을 뿐이다.
국제베를린디자인센터는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새로운 경제 요소로서 디자인을 부각시키고 있다. 옛 동독 디자이너들이 시장 환경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게 하는 교육 프로그램도 제공하고 있다.
프랑크푸르트=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