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잔틴 예술을 상징하는 이콘(icon·그리스 정교의 성화·聖畵)은 역(逆)원근법의 그림입니다. 그림 속 탁자는 그림 깊숙이 들어갈수록 좁아지는 것이 아니라 더 넓어집니다. 원근법 그림의 경우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의 초점이 관객(주체)에게 있다면, 이콘의 초점은 반대로 그림 속 주인공 곧 예수(객체)와 여러 성인들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주체의 해체와 다성주의(多聲主義)가 의미하는 것이 뭡니까. 바로 포스트모더니즘 아닐까요.”
‘비잔티움, 빛의 모자이크’의 저자인 이덕형(45·사진) 성균관대 교수는 독특한 이력의 학자다. 러시아어문을 전공한 그는 소련 유학이 불가능했던 1980년대 프랑스로 유학, 가톨릭 예수회 수도사들의 유일한 정교(正敎) 공동체인 파리의 ‘생 조지’에서 4년을 지내며 정교의 교리와 함께 그 성화인 이콘의 제작기법을 배웠다.
그러면서 러시아의 문학과 예술을 관통하는 정교 사상을 이해하게 됐고 이를 바탕으로 그 뿌리가 된 비잔틴문화까지 탐구하게 됐다. 2001년 펴낸 ‘천년의 울림-러시아 문화예술’이 정교와 토속신앙이 겹쳐진 러시아의 이중 종교적 전통에 대한 문화사라면 이번 책은 정통 정교를 뿌리로 한 비잔틴문화에 대한 미학서다.
“칸딘스키, 말레비치, 샤갈과 같은 러시아 미술가들이 현대미술의 선구자로 나서고, 다성주의 작법의 선구자 도스토옙스키와 다성주의 문학이론을 개발한 바흐친, 그리고 몽타주 이론을 영화에 적용한 예이젠시테인이 모두 러시아인이었던 것도 우연은 아니겠죠.”
15세기 러시아 화가 안드레이 루블료프의 ‘성삼위일체’ 이콘. 가운데 테이블을 보면 그림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더 커진다. 그림을 보는 화가나 관객의 관점이 아니라 그림 속 테이블에 앉은 인물의 관점에서 그려진 것이다. 사진 제공 성균관대출판부 이 교수는 초기 그리스도교가 서로마(라틴)와 동로마(비잔티움)로 나뉘면서 라틴은 진리를 언어로 규정할 수 있다는 로고스의 전통에 선 반면 비잔티움은 진리는 부정을 통해 규정될 수 있다는 아포파시스를 택했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이 아포파시스의 전통은 ‘말로 전해지면 이미 도가 아니다(道可道 非可道·도가도 비가도)’거나 ‘구름을 그리면 자연스럽게 달이 드러난다(烘雲拓月·홍운탁월)’는 동양적 사상과 매우 닮았다.
“라틴 세계에서 그림이 감각적 세계를 시각화한 사물에 불과하다면 비잔틴 세계에서 이콘은 언어와 음성이 아닌 다른 방법(아포파시스)으로 영적 세계를 감각화한 것으로 신과 인간의 영적 통로입니다. ”
비잔틴 시대의 감각의 복원이 초월적 존재와의 소통을 근거로 했다면 과연 오늘날 포스트모던 시대의 감각의 복원에서 그 초월적 존재는 무엇인가. 이 교수는 “그것이 물신(物神)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초월성이 모색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