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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시도당 끝없는 공천 잡음

입력 | 2006-03-21 03:01:00


한나라당이 5·31지방선거에서 출마 희망자들의 공천 로비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한나라당은 광역단체장을 제외한 여타 지방선거 후보자의 공천권을 시도당이 행사하는 ‘분권형 공천제’를 실시하고 있어 시도당 공천심사위원들이 집중 공략 대상이 되고 있다.

일부 시도당에선 공천심사위원들이 개인적, 지역적 이해관계에 좌우되고 있다는 불만이 나오는 등 공천을 둘러싼 잡음도 빚어지고 있다.

▽읍소, 전화 공세=경기도의 한 공천심사위원은 용케도 집 주소를 알고 찾아와 무조건 도와 달라고 읍소하는 공천 희망자들에게 몸살을 앓다 최근 당에도 알리지 않고 임시로 이사를 했다.

영남지역의 한 도당사무처장은 요즘 하루 50여 통씩 걸려오는 휴대전화를 받지 않으려고 아예 전원을 꺼 놓았다가 일정 시간에 수신 목록을 점검해 신원이 확실한 사람에게만 응답하고 있다.

강원도의 한 공천심사위원은 “대면 접촉도 안 하고 출마 희망자들의 전화도 받지 않았더니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충성 맹세’를 하는 예비후보도 있다”면서 “지인을 통해 특정 후보를 도와 달라고 호소하는 ‘대리 접촉’ 시도도 많다”고 말했다.

▽금품 공세=수도권 광역단체장 후보로 당내에서 해당 지역 공천에 영향력이 있다는 평을 듣고 있는 모 의원의 핵심 측근은 며칠 전 사무실에서 차를 타고 나서는 길에 다짜고짜 인사를 하고 동승한 광역의원이 큼지막한 케이크 상자를 건네 깜짝 놀랐다.

겉은 케이크처럼 보였지만 묵직한 것이 돈이 들어 있는 게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이 측근은 “족히 5000만 원은 들었을 것 같은 그 상자를 받는 순간 정치적 생명이 끝난다는 생각에 모골이 송연했다”고 전했다. 그는 즉각 차를 세워 광역의원을 내리게 하느라 진땀을 흘렸다고 말했다.

수도권의 한 지역에선 공천심사위원장을 맡고 있는 원외위원장이 모호텔 사우나에서 광역 및 기초의원 후보공천 대가로 거액을 받기로 하는 내용을 녹음한 테이프와 녹취록이 중앙당에 입수돼 사실 확인 작업이 진행 중이다.

당 주변에서는 올해부터 유급제가 된 지방의원 출마 희망자들이 아예 4년간 예상 월급 총액의 절반을 내놓으며 공천을 도와 달라고 공세를 퍼붓는다는 얘기도 떠돌고 있다.

권영세(權寧世) 서울시당 공천심사위원장은 후원금을 먼저 보낸 뒤 접근하려는 출마 희망자들을 차단하기 위해 아예 후원금 계좌를 막아버렸다.

▽불만, 잡음=일부 공천 희망자 중에는 세가 불리하게 돌아간다고 판단되면 공공연히 공천심사위원 등을 비난하기도 한다.

서울의 한 지역에서는 시의원 후보 경선 결과에 불만을 품은 당원들이 절차 하자를 이유로 시정을 요구하다 받아들여지지 않자 당 홈페이지에 10차례나 고발 글을 띄웠다.

공천 과정의 실무를 챙기는 각 시도당 사무처장이 공천심사위원과 별도로 막강 파워를 행사해 논란이 되기도 한다. 이것 역시 공천권이 시도당에 위임된 결과이다.

충청권에서는 무소속 기초단체장의 입당을 사무처장이 막은 사례도 있다. 또 일부 지역에선 도당 사무처장이 직접 기초단체장 후보 영입에 나섰다가 다른 후보 진영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현역단체장은 ‘물갈이’ 촉각=현역단체장들이 ‘공천 물갈이’를 막기 위해 자신의 재공천 당위성을 알리는 홍보자료를 내거나 탈당 위협을 불사하며 맞서는 사례도 생기고 있다.

서울의 경우 25개 구청장 중 23개를 차지한 당 소속 단체장 가운데 절반가량은 공천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얘기가 퍼진 가운데 일부 구청장은 자체 조사한 여론 지지도 결과를 당 관계자들에게 돌리며 우호 여론 조성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중부권의 한 단체장은 “여론조사를 해 보면 2위와의 격차가 15% 이상 난다”며 여론조사 자료를 도당에 내고 무경선 공천을 강력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 차원에서 지지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일부 단체장에 대한 유권자들의 ‘교체희망지수’를 면밀히 조사해 공천 배제 대상을 선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아예 탈당 후 무소속 출마 채비를 갖추고 있는 현역단체장도 늘고 있다.

박성원 기자 swpark@donga.com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