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스의 유재학 감독은 20일이 43번째 생일이었다.
부인과 두 아이를 모두 미국에 떠나보낸 ‘기러기 아빠’인 그는 생일상을 받을 여유가 없었다. 그 대신 최석화 사무국장과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누다 겨우 잠자리에 들었다.
바로 다음 날인 21일 전자랜드와의 경기에서 이기면 1998년 대우에서 프로 감독 생활을 시작한 뒤 처음으로 정규리그 우승을 맛보기 때문이었다.
유 감독은 1986년 연세대 졸업 후 모비스의 전신인 기아의 창단멤버로 입단했으나 부상으로 27세 때 아쉽게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그래서 모비스의 지휘봉을 처음 잡았던 2004년 그는 “처음 실업 선수 생활을 한 친정팀에 돌아와 남다른 감회가 있다”며 의욕을 보였다.
하지만 둥지를 옮긴 모비스 역시 화려했던 기아의 영광을 뒤로한 채 하락세에 접어든 상태였고 6강 진출에 실패했다.
그래서 올 시즌을 앞두고 더욱 독하게 마음먹었다.
직접 숙소까지 찾아가는 정성으로 특급 용병 윌리엄스를 선발했고 시즌 전부터 강도 높은 체력 훈련을 실시해 장기 레이스에서 강한 뒷심을 마련했다. 공격형 선수였던 우지원 양동근 이병석에게 강력한 수비 능력을 심어줬고 부상에 신음하던 김동우의 재기를 거들었다. 용병 센터를 세 차례나 교체하며 적시에 변화를 준 것도 주효했다. 주전과 후보의 치열한 경쟁을 유도해 경기력을 극대화면서도 끈끈한 팀워크를 유지한 것도 유 감독 특유의 용병술이었다.
정작 유 감독 자신은 건강을 해쳤다. 몇 년째 고생하던 당뇨병이 악화되면서 시력이 떨어져 안과를 다녀야 했다.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보니 머리카락도 부쩍 빠졌다.
그래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던 유 감독이 결국 우승 헹가래를 받았다. 하루 늦게 찾아온 생일 선물을 받는 그의 얼굴에 모처럼 환한 미소가 번졌다.
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