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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주 개방 봄바람]동반성장? 中 위성국가화?

입력 | 2006-03-22 03:00:00


지금 중국 단둥(丹東)을 달아오르게 하고 있는 북한의 신의주 개방 및 개발 구상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대목은 ‘신의주 프로젝트’가 북-중 양국의 전략적 합의 아래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2002년 북한의 ‘신의주 행정특구’ 구상 때와는 확연히 다른 차원이다.

더구나 단둥 현지 분위기를 보면 신의주 개방 주도권을 중국 측이 쥐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신의주가 중국의 북한 진출 거점인 ‘화관(華館)’이 될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돌고 있다.

국제위기기구(ICG)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대외교역의 40%, 소비재 수입의 80%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중국은 지난해 북한의 항만, 공장, 에너지 분야에 대한 투자액을 20억 달러로까지 확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중국 의존도 심화는 그다지 새로울 게 없는 뉴스다.

그런데도 해외의 한반도 전문가들이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의 1월 중국 극비 방문 이후 중국의 대북 전략 변화 가능성과 북-중 양국의 신의주 프로젝트에 주목하는 이유는 뭘까? 일각에서는 중국의 최근 대북 전략이 북한 재건을 통해 장기적으로 ‘위성국가화’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중국, 북한 재창조하기로”

北으로 가는 화물차
중국 단둥 시 스웨이 로의 해관(세관)으로 북한행 화물차가 들어가고 있다. 신의주 등 북한 지역 번호판을 단 차량도 가끔 눈에 띈다. 세관을 통과하면 압록강 철교(도로)를 지나 신의주로 간다. 현재 북한 생필품의 80%는 중국제. 북한의 대중국 의존도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단둥=구자룡 기자

미국 하와이 아시아태평양전략연구소에서 활동하고 있는 알렉산드르 만수로프 연구원은 최근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 인터뷰에서 “중국이 대북 전략을 바꾸기로 결정했다”고 단언하다시피 했다. 그는 “중국이 6자회담을 넘어 그들의 방식대로 북한을 재건하고(rebuild) 재창조(reinvent)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만수로프 연구원은 심지어 북-중 관계에 정통한 사람으로부터 들은 말이라며 “김 위원장의 방중 이후 북한은 마치 중국의 피후견국(client state)처럼 행동하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이 중국 지도부가 제시한 ‘북한 재건 전략’을 전적으로 수용했다는 얘기다.

민족화해협력범민족협의회(민화협) 상임의장을 맡고 있는 정세현(丁世鉉) 전 통일부 장관이 이달 초 정보기관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는 자리에서 북한의 중국 경제 종속화 경향을 지적한 뒤 ‘남북경제공동체’ 구축 노력을 서둘러야 한다고 촉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보기관 간부들은 정 의장의 경고를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였다고 한 참석자는 전했다.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동아시아 정세에 관한 책을 준비 중인 스콧 스나이더 전 아시아재단 서울사무소장은 “중국의 대북 투자는 ‘위장된 경제 원조’라는 분석에 눈길이 간다”고 말했다.

그러나 베이징(北京)의 북-중 관계 전문가들은 이를 북한의 중국 위성국가화 구상이 아니라 ‘선의의 동반성장론’이라고 설명한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균형발전론’과 2005년 6월 중국 국무원 판공처 결정에 따라 동북 3성(랴오닝, 지린, 헤이룽장)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접경지역인 신의주가 동반성장 지역으로 부각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주변지역인 동북 3성과 북한이 동반성장해야 북한의 갑작스러운 붕괴를 막고, 중국의 발전에 필요한 동북아 안정을 꾀할 수 있다는 기존의 대북전략이 바뀐 게 아니라는 얘기다.



○정권교체론에 맞선 북-중간 빅딜?

‘신의주 프로젝트’의 배경과 김 위원장의 방중 구상을 둘러싸고 전문가들 사이에서 여러 갈래의 관측이 제기되고 있지만, 정작 김 위원장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아직 오리무중(五里霧中)이다. 김 위원장이 2001년 1월 상하이(上海)의 푸둥(浦東)지구를 돌아본 뒤 “천지개벽”이라고 충격을 토로했지만 정작 ‘상하이 구상’을 내놓은 것은 1년 반이나 지난 2002년 7월 1일(7·1 경제개선관리조치)이었다. 그리고 2개월 뒤인 9월에 ‘신의주 행정특구’를 공개했다.

그런데 김 위원장 방중 이후 북한이 중국과 함께 ‘신의주 프로젝트’에 나서자 워싱턴의 일부 싱크 탱크 사이에서는 “후 주석을 필두로 한 중국의 제4세대 지도부와 김 위원장의 ‘정권 보장 빅딜설’과 무관치 않을 것”이라는 흘러나오고 있다.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김 위원장이 1월 방중 때 중국 정치국 상무위원 9명 전원을 만나게 해달라고 요청한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흔히 제4세대 지도부로 불리는 중국의 현 정치국 상무위원은 북한으로 볼 때 모두 ‘신세대’다. 과거 지도부처럼 무조건적으로 북한의 세습정권을 지지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을 느꼈을 것이라는 얘기다.

더 직접적으로는 북한의 ‘정권 변경(regime change)’를 공언해 온 미국의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위조지폐 문제를 계기로 대북금융제재를 강화하자 수세에 몰린 북한이 중국의 제안을 전격 수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북한의 김계관(金桂寬) 외무성 부상은 지난해 5차 6자회담 때 금융제재를 언급하며 “모든 혈(穴)이 막혀서 죽을 지경이다”라고 털어놔 회담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는 후문이다.

김정안 기자 credo@donga.com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북한전문가 란코프 교수 “北이 원하든 원치않든 中에 결정권”

“북한의 미래에 대한 생각이 180도 바뀌었다.”

국민대 교환교수로 와 있는 안드레 란코프(사진) 호주 국립대 교수는 21일 인터뷰에서 대뜸 이 말부터 했다. 그는 “중국이 북한 재건에 나섰다”면서 “(중국의 재건 전략으로) 붕괴 위기를 모면한 북한은 주권국가로 거듭나는 동시에 중국의 위성국가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그는 러시아 출신으로 1980년대 김일성종합대에서 수학한 북한 전문가.

―최근 북-중 관계가 어떤가.

“최근 2년 동안 중국의 대북(對北) 무역량이 급격히 늘었다. 그러나 이것은 포장일 뿐이다. 무역이란 상호적이지만 북한의 현재 상태는 그렇지 못하다. 즉, 본질적으로는 원조다. 북한 정권 유지 비용은 연간 20억∼40억 달러로 추정된다. 이 금액은 중국 입장에서 그리 큰 돈이 아니다. 중국의 대대적인 북한 재건이 시작됐다고 본다.”

―중국의 그 같은 전략 변화에는 어떤 계기가 있었나.

“그것은 50년, 100년 후에나 알 수 있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크게 볼 때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미국이다. 중국은 통일 한반도에서 미군이 바로 압록강 앞에 주둔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둘째는 중국 공산당의 정통성(legitimacy) 강화 차원이다. 북한 공산당 정권 붕괴가 중국 공산당 정권 유지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예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중국은 북한의 붕괴를 원치 않는다. 중국이 나서지 않으면 북한은 상당히 위급한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다.”

―중국의 궁극적인 목표는….

“남한이 개성공단을 지어 후원한다면 중국은 신의주다. 이미 신의주에서 주민 이동이 시작됐다고 하지 않나. 중국의 신의주 공단 개발이 시작됐다고 보고 있다. 중국의 대북 원조 목표는 남한과 다르다. 지금 주는 것은 북한 체제 유지를 위한 것이지 한반도 통일을 위한 것이 아니다. 또한 중국을 위한 중국식 개혁이라고 보면 된다. 이것은 남한에 좋은 뉴스는 아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이번 중국 방문도 북-중 간의 그런 합의 때문이었나.

“그렇지도 않다. 북한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중국이 결정하면 그만이다. 재미나는 점은 중국은 북한을, 북한은 중국을 서로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김정안 기자 cred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