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초적 본능 2.’ 섹스와 폭력에 관한 글을 쓰는 범죄소설 작가 캐서린(샤론 스톤)은 냉철하고 이성적인 정신과 의사 마이클(데이비드 모리시)을 유혹해 치명적인 위험에 빠뜨린다. 48세의 샤론 스톤은 과거의 영광을 재연할까. 사진 제공 영화인
○ 1편의 설정-캐릭터 거의 그대로
무려 14년 전인 1992년의 일이지만, 지금도 기억에 생생히 남아 있다. 의자에 앉은 샤론 스톤이 다리를 바꿔 꼬면서 슬쩍 뭔가가 빛처럼 스쳐 지나갔던 ‘원초적 본능’의 기억 말이다. 그 영광이 이번에도 재연될 것인가.
‘원초적 본능 2’가 30일 개봉된다. 이 속편은 1편의 이야기를 이어가거나, 살짝 비틀어 변주하거나, 아니면 돈을 때려 부어 스케일을 확장시키는 할리우드 영화의 ‘속편 법칙’과는 다른 태도를 보인다. 1편의 설정과 캐릭터와 이야기를 거의 100% 복사한 뒤 상대 남자배우만 바꾸어 놓은 일종의 복제품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만큼 속편은 1편의 성공에 노골적으로 기대고 있지만, 안타깝다. 영화를 보고 유일하게 기억에 남는 건, 현대 의술의 축복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샤론 스톤의 인공적인 가슴과 돈 냄새 폴폴 풍기는 그녀의 패션감각뿐이니 말이다.
소설가 캐서린(샤론 스톤)은 달리는 스포츠카 안에서 축구 스타와 정사를 나눈다. 차는 강으로 추락하고 약혼자는 사망한다. 살인 용의자로 지목된 캐서린. 경찰이 그녀에 대한 정신감정을 의뢰함에 따라 정신과 의사 마이클(데이비드 모리시)을 만나게 된다. ‘통제가 불가능한 위험 중독’이라는 감정 결과를 받은 캐서린은 마이클을 향한 유혹을 시작한다. 마이클의 주변 인물들이 하나 둘 살해되면서 급기야 마이클이 범인으로 몰린다.
‘원초적 본능’이 한낱 ‘에로영화’와는 다른 지점에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건, 섹스가 폭력과 살인이라는 인간의 원초적 광기와 동일한 뿌리에서 태어났다는 뭔가 그럴듯한 정신분석학적 이론을 밑바닥에 깔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속편은 ‘그냥’ 에로영화다.
‘위험중독증 환자’라는 전문 용어까지 동원하면서 영화는 베드신을 그럴싸하게 포장해 보려 하지만 캐서린과 마이클, 그리고 사건을 쫓는 형사 워시번이 벌이는 숨바꼭질은 어설프기 짝이 없다. 냉철한 정신과 의사를 연기하는 데이비드 모리시는 전편의 마이클 더글러스에 비하면 카리스마나 남성 호르몬이 초라한 수준이다.
○ 정사의 질-양 모두 기대 못미쳐
이제 남은 관심사는 하나다. 그럼, 영화는 야한가.
불행히도 그것도 아니다. 속편은 정사의 질과 양이 모두 모자란다. ‘유사 정사’를 포함해 정사 장면이 딱 4군데 있는데, 그중 샤론 스톤이 등장하는 장면은 3곳이다. 이 3군데 중 첫 번째 것은 시늉만 하다 말고, 두 번째 것은 싱거우며, 세 번째 것은 관성적이다. 살쾡이 흉내를 내는 앙칼진 표정과 신음소리는 너무나 기계적이며, 침대 위 체위는 실험정신이 부족하고, 섹스 중 상대의 목을 혁대로 감아 조르는 그녀의 행위는 안타깝게도 철 지난 것이다. 화끈한 노출이 숨어 있지도 아니하다.
그냥 보여 주면 될 걸 영화는 말로 다 때우려 든다. 샤론 스톤은 “당신이 맘에 들어. 주도하는 걸 좋아하거든” “위험을 느끼면 흥분돼?” 같은 질척한 대사들을 남발하지만, 이는 살인의 원초적 본능과 뒤엉킨 위험천만한 대사가 아니라 한껏 달아오른 중년 여성의 ‘작업용 멘트’에 가깝게 느껴진다.
48세의 샤론 스톤은 여전히 놀라운 피부(‘변장’ 수준의 두꺼운 파운데이션으로 무장했지만)와 다리 곡선을 보여 주지만, 탄력이 증발되어 뻣뻣해진 보디라인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샤론 스톤에겐 안된 말이지만, 영화 속 그녀의 대저택 내부에 전개되는 모던한 인테리어가 그녀보다 훨씬 더 섹시한 것이다.
뇌쇄적인 것과 징글맞은 건 종이 한 장 차이지만, 그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 크다. ‘롭로이’ ‘자칼’의 마이클 캐턴존스 감독. 18세 이상.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