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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인권탄압하는 北과 거래없다”

입력 | 2006-03-23 03:04:00

22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북한인권 국제대회에서 참석자들이 북한 인권 실상을 폭로하는 탈북자들의 증언을 담은 영상물을 보고 있다. 브뤼셀=금동근 특파원


유럽연합(EU) 고위 당국자가 22일 북한 인권문제와 대북 지원문제를 연계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북한 인권 실상을 널리 알리고 관련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이날 벨기에 수도 브뤼셀의 크라운플라자호텔에서 개막된 제3차 북한 인권 국제대회 자리에서다.

이번 대회는 미국의 ‘프리덤하우스’, 벨기에의 ‘국경 없는 인권회’ 등이 공동 주최했고 23일까지 진행된다. 북한 인권 국제대회는 지난해 7월 미국 워싱턴, 12월 서울 대회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이바니 부위원장

▽“인권문제와 대북지원 연계”=이슈트반 셴트 이바니 EU의회 한반도위원회 부위원장은 이날 대회에 참석해 “북한이 인권문제 개선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EU 차원의 무조건적인 대북 지원은 더는 힘들다”고 밝혔다. EU는 1995∼2005년 북한에 4억2000만 유로를 지원했다.

이바니 부위원장은 “인권을 탄압하는 북한 정권과는 거래할 수 없다(no business)”면서 “EU가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 좀 더 큰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23일 열리는 EU의회의 탈북자 관련 청문회를 기획했다.

그는 청문회에 대해 “EU의원들이 탈북자의 증언을 통해 북한 인권의 실상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첫 행사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바니 부위원장의 소속 당인 ‘자유민주연합’은 EU의회 내 제3당으로 좌파로 분류되는 진보 정당이다. 인권대회의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 EU의회 내에서 북한 인권문제는 우파를 중심으로 제기돼 왔다”면서 “좌파까지 합세함에 따라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EU의 압박이 한층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인신매매 탈북 여성 첫 증언=“북한의 인권문제는 사람이 죽느냐 사느냐의 생존권 문제다. 유럽의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EU의 중심지에서 유럽을 상대로 북한 인권의 실상을 알리는 첫 대회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주최 측은 강조했다.

북한 인권 대회는 탈북자들의 증언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북한에서 예술선전대로 활동하다가 어머니 언니 여동생과 함께 중국으로 건너간 탈북자 이신(28·여) 씨는 인신매매를 당해 온 가족이 뿔뿔이 팔려간 사연을 털어 놨다. 인신매매를 당한 탈북 여성이 직접 증언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씨는 “노예나 다름없는 생활을 했다”면서 “인신매매를 당한 또 다른 탈북 여성이 달아나려다 붙잡히는 바람에 발가벗긴 채 길 한복판에서 수모를 당하는 모습도 목격했다”고 전했다.

체코에 있는 ‘조선체코 신발합작회사’ 사장이었던 김태산(53) 씨는 현지 공장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의 실태를 고발했다. 김 씨는 “한 달 뼈 빠지게 일하고도 월급의 대부분을 북한 당국이 빼앗아 가는 바람에 정작 여직원들은 한 달에 10∼13달러밖에 못 받았다”고 밝혔다. 러시아 불가리아 쿠웨이트 리비아 등을 비롯해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도 월급의 대부분을 당국에 빼앗긴다고 그는 설명했다.

이어 사이가 후미코 일본 대북 인권담당 특사는 일본인 납북자 실태를 자세히 설명한 후 “납북자 문제는 일본 정부의 주요 현안 가운데 하나로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고 있다”면서 국제사회의 협력을 촉구했다.

또 이날 행사에선 송영선(宋永仙) 한나라당 의원이 한국 정부의 대북 온건 정책을 비판했으며 참석자들은 탈북자의 증언을 담은 영상물 ‘꽃동산’을 감상했다.

▽평화원정대 반미시위=“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해 확인되지 않은 자극적인 정보가 흘러나오고 있다. 북한 인권을 거론하기에 앞서 미국의 대북 위협 요소를 해소하는 게 급선무다.”

북한 인권 대회가 열리는 같은 시간. 브뤼셀 거리에선 통일연대와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이 주축을 이룬 ‘한반도 평화원정대’의 반미 행사가 열려 다른 목소리를 냈다.

북한인권 대회에 맞불을 놓기 위해 원정을 온 원정대는 22일 유럽의회를 방문해 자신들의 입장을 담은 의견서를 제출한 데 이어 오후에는 브뤼셀 주재 미국대사관 앞에서 미국의 반인권 실태를 고발하는 집회를 열었다.

행사 주최의 성격에서 알 수 있듯 두 행사에서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입장은 크게 달랐다. 21일 평화원정대는 개성공단을 예로 들며 “북한은 개성공단을 개방하는 등 변화하고 있는데 미국은 일방적인 패권주의로 북한을 압박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브뤼셀=금동근 특파원 gold@donga.com

■프리덤하우스

이번 대회 공동 주최자로 1941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 엘리너 루스벨트 씨 등에 의해 설립된 민간단체. 민주, 공화 양당의 저명한 정치인과 학계, 언론계 인사 등으로 구성된 초당적 조직이지만 보수 성향으로 알려져 왔다. 세계의 민주화 운동 지원과 반독재 운동 등을 전개해 왔다. 2004년 미 의회가 북한인권법을 제정해 북한 인권 관련 단체에 정부 예산 지원을 할 수 있게 되자 미 국무부는 200만 달러를 프리덤하우스에 지원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