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것인가, 말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이제 공은 주부에게 넘어왔다. 식탁에 차려지는 밥쌀용으로 처음 수입되는 미국산 칼로스(CALROSE) 쌀 시판을 앞두고 주부들의 선택에 초미의 관심사가 집중되고 있다.
캘리포니아의 장미라는 뜻의 칼로스 쌀은 한국 중국 일본 등지에서 주로 재배되는 짧고 통통한 자포니카(중단립종) 계통의 쌀이다.
가늘고 길쭉한 게 밥을 지으면 날아갈 듯 푸석푸석한 인디카 계통 안남미(安南米)가 주종을 이루던 미국에서 동양계 주민이 늘어나면서 1948년부터 캘리포니아 지역에 본격 공급됐던 품종으로 최근까지도 꾸준히 품질이 개선되어 왔다.
할인매장과 슈퍼마켓의 한켠을 차지하는 칼로스 쌀을 바라볼 주부들의 심경은 다소 복잡한 것 같다.
과거 생산성은 높지만 맛없는 통일벼를 먹어야 했던 시절 미군부대에서 불법 유출된 칼로스 쌀을 먹어본 사람들은 '미국 쌀밥이 맛있더라'는 기억을 갖고 있는 반면 수입쌀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도 적지 않다.
주부 이모(43·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 씨는 "미국 쌀이 맛있다는 어머니 말씀대로 칼로스가 맛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천 쌀 수준의 맛이 되고 가격이 싸다면 사볼 생각"이라며 "농사짓는 분들이 마음에 걸리기도 하지만 주부 입장에서는 같은 수준의 맛이라면 굳이 돈을 더 지불할 필요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고향이 전북 부안인 주부 송은숙(48¤서울 강동구 암사동) 씨는 "얼마 전 고향 분들을 만났더니 미국 쌀 때문에 농촌이 다 죽게 생겼다고 하소연하더라"면서 "그렇지만 우리 또래에서는 막연하게나마 미국 쌀이 우리 쌀보다 맛있다는 생각이 퍼져 있다"고 전했다.
한동안 일본에 살면서 일본 쌀과 중국 쌀, 미국 쌀, 안남미까지 고루 접해봤다는 배화대 전통조리과 김정은 교수는 "일본도 쌀 작황이 나쁘면 주변 국가들로부터 쌀을 수입했기 때문에 고루 먹어볼 기회가 있었다"며 "칼로스는 일본의 일등급 쌀과 별 차이 없었다"고 말했다.
사실 칼로스는 미국에서도 최상급은 아니다. 미국 현지에서는 고시히카리 품종인 '타마키' 등이 최고급 쌀로 통한다.
정작 미국에 사는 우리 교민들 역시 칼로스 애용자만은 아니다.
남편을 따라 6개월간 캘리포니아주 LA카운티에 거주하다 최근 귀국한 주부 이모(35¤서울 양천구 목동) 씨는 "교민가정을 보면 상당수가 해태나 CJ 등 현지에서 생산된 우리나라 브랜드의 쌀을 먹고 있었다"며 "다만 맛과 품질에 비해 칼로스는 가격이 저렴해 우리 시장에 들어오면 우리 쌀이 경쟁이 안 될 거란 생각은 들었다"고 말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2004년 11~12월 주부 310명을 대상으로 국산 및 외국산 쌀의 밥맛에 대해 시식평가를 한 결과 캘리포니아산 '그린'과 당시 최고 브랜드였던 '이천 임금님표쌀'이 같은 등급을 받았다. 그린은 칼로스와 같이 1등급에 해당되는 미국 쌀 브랜드.
당시 조사에서 주부들은 임금님표쌀 20㎏짜리의 소비자가가 5만5000원인데 비해 그린에 대해서는 4만4688원을 지불할 의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최근 국내 쌀 시장은 '탑라이스' 등 국산 고품질 고가 브랜드도 나와 있는데다 저농약쌀 유기농쌀 등 다양한 품질의 쌀이 다양한 가격대로 경합을 벌이고 있는 실정.
주부 전나영(50¤서울 강남구 개포동) 씨는 "칼로스가 아무리 맛좋고 싸더라고 살 생각이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전 씨는 "과일 야채 우유 같은 다른 식품도 비싸더라도 유기농을 찾는데 쌀만 수입품을 먹을 수 있느냐"며 "더구나 집집마다 집에서 밥 먹는 횟수가 줄어 우리 식구도 하루 한 끼만 집에서 먹는데 이왕이면 안전한 우리 쌀을 사먹겠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주부 김영순(47¤서울 동작구 흑석동) 씨도 "우리는 경기 양평에서 농사를 지어 콩 고추 같은 채소는 직접 재배해 먹고 쌀은 농약을 안 치는 조건으로 계약재배 한 것을 사먹고 있다"며 "불안하게 수입식품을 먹느니 불편하고 비용이 들더라도 안전한 식품을 먹자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국식품연구원 쌀연구단의 김상숙 박사는 "쌀은 공산품이 아니기 때문에 칼로스에 대해 단정적으로 평가할 수 없지만 품종 자체가 국산 일등품과 동일하고 선진국의 엄격한 품질관리를 받는 만큼 잔류농약에 대한 우려는 지나친 감이 있다"며 "다만 현지에서 도정되어 수입되기 때문에 여름철에는 지방산패가 발생하거나 묵은내가 날 우려는 있다"고 지적했다.
김 박사는 "소비자 입장에서 비용을 생각한다면 도정일자가 국산보다 오래되어도 저렴한 칼로스를, 품질을 생각한다면 칼로스보다 상대적으로 도정일자가 짧아 맛 측면에서 유리한 우리 쌀을 선택하게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쌀맛을 좌우하는 도정 후 유통기간 면에서 칼로스는 운송기간과 국내절차 기간을 감안할 때 40여일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박경아 사외기자 kapark0508@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