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화동1번지’ 4기 동인들. 김미옥 기자
혜화동 1번지에 가보셨나요?
행정구역상으로는 서울 종로구 혜화동 88-1번지인 그곳엔, 소극장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가 있다.
옆 사람과 연신 무릎을 맞부딪쳐야 하는 60석 규모의 좁은 객석, 30분만 지나면 엉덩이가 아파오는 딱딱한 의자, 배우들의 입 퇴장도 불편한 가로 세로 각 6m의 좁은 무대…. 하지만 그곳에선 연극의 ‘희망’이 싹튼다.
‘혜화동 1번지’는 소극장 이름인 동시에 연출가 동인 집단의 명칭이다. 지금은 연극계 중진이 된 기국서, 김아라, 이윤택 등 당시 40대 연출가 7명이 ‘혜화동1번지’를 개관하고 ‘혜화동 1번지 1기 동인’이 됐다.
이후 이곳을 거쳐 간 2기(박근형 김광보 등 5명), 3기(양정웅 이해제 등 6명) 동인들의 뒤를 이어 올해 4기 멤버가 출범했다. 4기의 멤버는 박정석(37) 강화정(36), 김한길(34) 우현종(34) 김재엽(33) 김혜영(30)등 6명. 동인 선정방식도 독특하다. 바로 전 기수가 만장일치로 다음 기수를 추천해 뽑는다. ‘혜화동1번지’ 동인이 되면 6개월씩 번갈아가며 소극장 ‘혜화동 1번지’의 극장장이 되어 극장을 꾸려나간다.
4기의 최고 연장자인 박정석 씨는 “4기 동인에 뽑혀 ‘사기진작’이 됐다”며 웃는다.
4기 동인들은 ‘대학로 콤플렉스’라는 제목의 동인페스티벌로 관객들과 첫 만남을 갖는다.
“어느새 대학로조차도 화려한 뮤지컬과 대중적인 연극만 올라가면서 ‘혜화동1번지’로 상징되는 실험극은 점점 더 설자리가 없어지는 것 같아요. 대중적인 작품에 대한 연출자의 콤플렉스, 또 실험극은 재미없고 어렵다고 느끼는 관객의 콤플렉스를 모두 버림으로써 궁극적으로 연극의 본질에 더 충실한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박정석)
대학로 소극장 중에서도 ‘혜화동1번지’는 가장 환경이 열악한 곳 중 하나지만, 동인들은 이 ‘보장된 공간’에 마음껏 자신의 작품을 무대에 올리고, 새로운 연극 실험도 할 수 있다. 일종의 ‘연극 인큐베이터’인 셈. 박근형의 ‘청춘예찬’, 양정웅의 ‘한 여름 밤의 꿈’등 대학로의 수많은 화제작이 이곳 무대에서 처음 싹을 틔웠다.
현재 혜화동1번지에서는 21일 시작한 ‘오늘의 책은 어디로 사라졌을까’가 공연중이며, 이어 ‘죽지마, 나도 따라 아플 거야’(강화정), ‘임대아파트’(김한길), ‘섬’(박정석), ‘살인자의 집’(김혜영), ‘질마와 솔래’(우현종)가 6월11일까지 차례로 무대에 올려진다. 1만2000∼1만5000원. 6편 모두 관람 ‘1번지 마니아 티켓’ 6만원. 02-3673-5576.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