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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들의 자녀교육 이야기]영어강사 곽영일 씨

입력 | 2006-03-24 03:08:00

영어강사 곽영일 씨(왼쪽)와 외동딸 수지 씨. 곽 씨는 딸이 어릴 때부터 영어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자주 마련했으나 강요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변영욱 기자


《‘수지 영어 인재 만들기 20년 프로젝트.’

영어 강사 곽영일(47·곽영일영어연구원장) 씨의 장기 계획이다. 수지(19·이화여대 사회과학부 1년) 씨는 그의 외동딸.

딸을 영어 전문가로 만들고 싶은 그는 딸이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한 영어 교육의 총기간을 20년으로 잡고 있다. 그는 “교묘하게 그리고 원 없이 영어 공부를 시켰다”고 말한다. 스스로 ‘극성 아빠’라 말할 정도이지만 딸이 거부감을 갖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가르쳤다고 한다.》

○ 우리말 잘해야 영어도 잘한다

유치원 때는 영어를 가르치지 않았다. 그가 아는 영문과 교수 부부는 자신들이 영어 때문에 고생한 것을 자식에겐 겪지 않게 한다며 집에서 영어만 썼다. 그러나 아이는 초등학교에 들어가 어눌한 우리말 발음 때문에 ‘왕따’를 당했다. 곽 원장은 “우리말 이상으로 영어를 잘할 수 없다”며 “우리말을 터득한 뒤에 영어를 시작해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딸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영어 학원에 보냈으나 교육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아 그는 “직접 가르치겠다”며 초등학생 대상 영어 학원을 열었다. 딸이 중학교에 들어가자 성인 과정도 개설했다.

그는 또 외국인에게 부탁해 딸에게 말을 시키고 전화번호를 주고받도록 했다. 집에 돌아온 딸은 “외국인 친구를 사귀었다”며 흥분했다. 외국인을 집에 초대해 딸과 나누는 대화를 녹음하기도 했다.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던 수지 씨는 “오 마이 갓”만 수십 번 반복했다. 사실은 과외였으나 딸의 부담을 우려해 숨긴 것이다. 다양한 영어를 접하게 한다며 6개월은 미국인, 6개월은 호주인 강사를 고용하기도 했다.

○ 영어사전 집안 곳곳에 놓아

고급 회화를 위해서는 독해력이 필수. 외국인 교수들은 컵라면을 영어 실력에 비유한다. 아무리 뜨거운 물(말하기)을 부어 봤자 내용물(읽기)이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곽 원장은 “요즘 회화만 강조한 탓에 철자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독해가 한국 영어 교육을 망친 게 아니라 독해만 하고 회화를 안 했던 게 문제”라고 말했다.

그가 추천한 초등학교 독해 교재는 펭귄의 ‘리더스’ 시리즈와 옥스퍼드의 ‘북웜’ 시리즈. 사용되는 단어 수에 따라 수준이 나눠지고 테이프가 나와 있다. 대형 서점의 외국어 코너에서 살 수 있다. 곽 원장은 우선 딸에게 테이프를 1, 2번 들려줬다. 당연히 무슨 말인지 잘 모른다. 책을 들고 큰 소리로 10번 정도 읽으면서 같이 해석했다. 그리고 나서 다시 테이프를 듣게 하면 딸은 귀에 쏙쏙 들어온다며 신기해했다. 핵심은 ‘speak loud(크게 말해라)’. 그는 “학원도 큰 소리로 읽기를 많이 시키는 곳으로 보내라”고 강조했다.

영어 사전은 열 권 넘게 사서 화장실, 식탁, TV 옆 등에 놓았다. 물론 영자신문과 주간지도 구독했다. 보라는 소리는 절대 하지 않았다. 그저 눈에 띄는 곳 어디나 늘어놓았다.

해외여행도 좋은 기회. 영어권 나라에 가면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를 주문하거나 화장실을 찾는 말을 직접 하게 했다. 호텔에서는 딸에게 전화로 룸서비스를 시키게 했다. “This is 702. Please, club sandwich(702호인데요. 클럽 샌드위치 부탁합니다)”라는 간단한 말에 바로 샌드위치가 배달되는 것을 본 딸은 너무 신기해하고 우쭐해했다.

○ 유학이 정답은 아니다

딸이 고등학교에 갈 때가 되자 유학을 고민했다. 여러 곳을 둘러보고 호주의 한 학교에 원서를 넣으려고 할 즈음, 그는 우연히 유명 벤처기업가의 강의를 들었다. 수천억 원의 재산을 가졌지만 자녀를 유학 보내지 않은 그 기업가는 “영어 좀 하면서 편히 살게 하고 싶으면 조기 유학을 보내라. 그러나 이 사회의 지도자가 되려면 시대의 아픔도 함께해야 한다. 입시제도가 잘됐든 아니든 함께 겪어야 한다”고 말했다. 곽 원장은 충격을 받았다. 당장 유학 준비를 취소했다. 그는 “세계 어디에 가도 잘할 초특급 인재가 아니라면 국내에서 학부를 마친 뒤 유학 가는 게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딸은 이화외고를 나와 대학에 들어갔다. 곽 원장은 학부에서 사회과학을 공부한 뒤 영어 실력을 더 쌓으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해 영문과를 강요하지 않았다.

수지 씨는 “영어를 잘한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아빠 덕분에 어릴 때부터 꾸준히 영어를 접해 영어에 대한 두려움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곽 원장은 고교 1학년 때까지는 팝송과 영화로 자녀와 같이 영어 공부를 하라고 조언했다. 특히 올드 팝 책과 음반을 사서 따라 부르게 하면 발음도 좋아진다고 한다. 미국 랭귀지 스쿨에서는 노래를 많이 가르친다.

영화는 최신 영화가 좋다. 세계 시장을 겨냥해 외국인들도 알아듣기 쉬운 영어를 사용하기 때문. 최근작으로는 ‘뮌헨’ ‘게이샤의 추억’ 등을 추천했다. 공부할 장면을 한두 번 보고 대본을 소리내 읽은 뒤 다시 영화를 보면 잘 들린다.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영화대본’을 치면 대본을 제공하는 사이트를 찾을 수 있다.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영어로 일기 쓰면 영어실력이 ‘쑥쑥’

어린이 영어교육은 대입 수험 영어와 달리 부모의 판단과 선택에 좌우되므로 자녀와 함께 공부한다는 심정으로 적절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곽영일 원장이 어린이 영어 교육 방법을 추천했다.

▽아침 저녁 15분씩 큰 소리로 읽기=언어학자들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주장하는 것. 교과서나 동화책, 어린이 영어 신문을 읽게 한다.

▽영어로 일기 쓰기=영작과 말하기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학원에서도 이 방법을 많이 쓴다. ‘문방구점’이라는 단어를 모르면 ‘공책을 파는 곳’이라고 풀어 쓰는 등 특정 단어를 다른 방식으로 설명하는 능력을 키우도록 지도한다.

▽원어민과의 대화를 녹음해 받아쓰기=번거롭지만 아주 효과적이다. 자신이 영어로 말한 것을 다시 들어 보며 억양과 발음을 교정할 수 있다.

▽쉬운 단어의 다양한 뜻을 알게 하기=어려운 단어를 많이 외우게 하지 말아야 한다. ‘boy’가 ‘소년’뿐 아니라 ‘맙소사’ ‘어이쿠’ 같은 뜻이 있음을 알면 회화가 더 쉬워진다.

▽칭찬과 격려하기=처음 시작하는 아이들에게 부모의 칭찬이 효과적이다. 칭찬 받을수록 영어에 흥미를 느끼게 되고 실력도 는다.

▽영어만 쓰는 시간 갖기=하루 중 10분 이상은 영어로 말하는 시간을 갖는다. 배운 영어를 써 보는 것인데 온 가족이 나서야 한다. 처음엔 쑥스럽지만 습관이 되면 즐거워진다.

▽기본적인 문법 실력 쌓기=독해와 회화에 필요한 기본 문법을 방학 등에 정리하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