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 후 세월이 좀 지나 얻은 자녀를 흔히 ‘늦둥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언론도 마찬가지여서 최근에 열린우리당의 김성곤 의원이나 미국의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 씨의 자녀 출산 소식을 전할 때 ‘늦둥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그러나 이 단어에는 문제가 있다. 첫째, ‘늦둥이’는 태어난 자녀에게 해당되는 호칭인데 그들은 전혀 ‘늦지’ 않았다는 것이다. 새 생명들은 놀라운 신비의 과정을 거쳐서 이 땅에 태어난다. 탄생은 빠르거나 늦다는 평가를 할 수 없는 불가침의 영역이어서 신생아들에게 ‘늦었다’고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나 정서상 맞지 않다.
둘째, 대체로 ‘늦둥이’라는 표현은 남성의 연령을 기준으로 한다. 그래서 아빠의 나이가 많으면 엄마의 연령과는 상관없이 ‘늦둥이’가 되곤 한다. 그것은 태어나는 아이의 입장에서도, 아이를 출산한 어머니의 입장에서도 수용하기 어려운 일이다.
‘늦둥이’가 아니라 차라리 ‘희망둥이’가 어떨까. 저출산 극복은 어쩌면 이런 작은 용어의 개선에서 시작될 수도 있다.
송길원 목사·저출산 고령화대책시민연대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