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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卷七. 烏江의 슬픈 노래

입력 | 2006-03-25 03:00:00

그림 박순철


“남쪽 나루에 숨겨두었던 구강의 배들이 회수 북쪽으로 몰려가고 있습니다. 곧 적의 대군이 회수를 건너 남쪽으로 내려올 듯합니다.”

그렇다면 2백 기(騎)도 안 되는 군사로 그곳에 뻗대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이에 패왕 항우는 회수를 건넌 백여 기를 재촉해 밤길도 마다 않고 남쪽으로 내달았다. 하지만 모두가 사흘을 잇달아 잠 한번 제대로 자지 못하고 싸우며 쫓겨온 군사들이었다. 삼경 무렵이 되자 말과 사람이 너무도 지쳐 더 움직일 수 없었다.

“하는 수 없다. 부근에서 마을을 찾아 말과 사람을 먹이고 잠시 쉬어가자.”

패왕이 그렇게 말하고 가까운 마을에 들어 날이 밝을 때까지 인마를 쉬게 했다. 날이 밝자 패왕은 길을 떠나기에 앞서 좌우를 돌아보며 그곳이 어디쯤인지를 물었다.

“음릉현(陰陵縣)입니다. 현성(縣城)은 동쪽 이십 리쯤 되는 곳에 있다고 합니다.”

뒤따르던 군사들 가운데 하나가 마을 사람들에게서 들은 대로 일러주었다. 그 말을 들은 패왕은 동남쪽으로 길을 돌게 해 음릉 현성을 비켜갔다. 이미 경포(경布) 밑에 든 성이라 자신을 따르는 백여 기로 떨어뜨릴 수 없을 바에야 차라리 피하는 게 나을 듯싶었다.

하지만 음릉 성안 군민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호젓한 숲 속으로 돌아가다 그리 되었는지, 패왕과 그를 따르던 인마는 해뜰 무렵 그만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아무리 탐마를 풀어 사방을 살펴보게 해도 어딘가 어딘지 알 길이 없어 한식경이나 헤맸다. 그러다가 갑자기 길을 만나 반갑게 내닫는데, 오래잖아 길이 좌우 두 갈래로 나뉘었다.

패왕과 따르는 인마가 어디로 갈지 모르는데 마침 밭에 나온 농부 하나[일전부]가 보였다.

“과인은 서초 패왕이다. 회수 북쪽에서의 싸움이 뜻과 같지 않아 강동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여기서 가장 가까운 강수(江水=長江) 나루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가?”

앞서 말을 달려간 패왕이 아직도 백성들을 자기편이라 믿고 망설임 없이 자신을 드러내며 그렇게 물었다. 농부가 흠칫하다가 곧 공손하게 머리를 조아리며 알려 주었다.

“왼쪽으로 가십시오. 그리하면 동성으로 빠져 해가 지기 전에 오강정(烏江亭) 나루에 이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는 그 농부의 얼굴은 패왕뿐만 아니라 따르던 백여 기 가운데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만큼 정성스러우면서도 꾸밈없어 보였다.

패왕은 그가 일러준 대로 군사들과 함께 왼쪽 길로 접어들었다. 한군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인마를 재촉하여 다시 한 식경을 가자, 길은 없어지고 큰 늪[大澤]이 앞을 가로막았다. 보이는 것은 늪 사이사이로 이리저리 어지럽게 이어진 둑길뿐이었다. 한왕은 그래도 그 농부를 의심하지 않았다.

“이 늪지만 지나면 다시 길이 나올 것이다. 어서 이곳을 벗어나자.”

그러면서 앞장서 인마를 이끌었다. 보기와 달리 둑길은 길이라기보다는 늪 사이에 남은 질흙 언덕에 가까웠다. 말발굽이 질흙에 빠져 앞으로 나아가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패왕은 급한 마음에 인마를 재촉해 앞으로 내닫기만 했다.

마침내 패왕이 그 농부에게 속은 줄을 깨닫고 군사를 돌린 것은 그 늪지를 반나절이나 헤맨 뒤였다.

글 이문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