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장 각광받는 디자인 모토 중 하나는 ‘심플 앤드 펀’이다. 찰나에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거나, 재미를 주지 않는 디자인은 생명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기기의 정보가 많으면 많을수록, 소통의 방식은 간편하고 재미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TV 휴대전화 등 여러 제품과 사용자의 소통을 쉽고 재미있게 해 주는 ‘GUI(Graphical User Interface·사용자 맞춤형 메뉴화면)’를 비롯해 온라인 게임이나 캐릭터들도 심플 앤드 펀을 추구한다.
특히 온라인 게임에서 심플 앤드 펀은 흥행의 필수 조건이나 다름없다. ‘카트라이더’ ‘크레이지아케이드비앤비’ ‘컴온베이비’ ‘스매쉬스타’ 등 캐주얼 게임들이 주목받는 것도 그런 이유. 캐주얼 게임은 상하좌우 방향키와 2, 3개의 다른 키만으로 조작할 수 있는 심플 그래픽으로 디자인된 것을 말한다.
디자인 섹션 8회에서는 캐주얼 게임을 비롯해 전자제품과 이동통신 서비스에 적용되는 ‘심플 앤드 펀’의 매력을 소개한다.》
○단순하고 우스꽝스러운 캐릭터
카트라이더는 ‘국민 게임’으로 불린다. 유저가 한국인 4명 중 1명 꼴인 1200만 명에 이를 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한국능률협회컨설팅이 15일 발표한 ‘2006 브랜드 파워’ 온라인 게임 부문의 1위도 카트라이더가 차지했다.
카트라이더의 성공에 힘입어 크레이지아케이드비엔비(넥슨) 컴온베이비(엑스포테이토) 등 다른 캐주얼 게임들도 주목받고 있다.
‘스타 크래프트’ ‘리니지’ 등 사실적인 그래픽 디자인과 복잡한 조작 방식을 가진 ‘다중온라인역할놀이게임(MMORPG)’ 업체들도 최근 캐주얼 게임 개발에 앞 다투어 나서고 있다. 리니지의 엔씨소프트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스매쉬스타의 공개시범 테스트를 하고 있다. MMORPG인 ‘라그나로크’로 유명한 그라비티도 다음 달 캐주얼 게임인 ‘러브 포티’의 공개시범 테스트에 들어간다. MMORPG가 지배해 왔던 온라인 게임 업계에 캐주얼 게임이 강력한 대안 세력으로 떠오를 조짐이다.
카트라이더를 비롯한 캐주얼 게임의 인기 비결은 심플 앤드 펀 디자인이다. 청강문화산업대 컴퓨터게임과의 오현주 교수는 “몇 개의 키만으로 조작할 수 있는 단순함과 친근하고 흥미로운 캐릭터가 캐주얼 게임에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라고 말했다.
캐주얼 게임의 ‘펀’ 요소는 우스꽝스러운 이미지를 지닌 SD(슈퍼 디포메이션·Super Deformation) 캐릭터들. SD는 일본에서 유래한 인물디자인 스타일로 재미있고 귀여운 캐릭터를 그릴 때 많이 쓰인다. 심플한 선 처리를 바탕으로 머리가 몸 전체의 절반을 차지하며 손 팔 발 다리가 변형돼 있어 ‘이등신 캐릭터’로도 불린다.
코믹 캐릭터 디자인을 강조하기 위해 기존의 ‘멋있는’ 동화 주인공을 SD 캐릭터로 변형한 게임도 있다.
그리곤엔터테인먼트가 개발해 포털사이트 파란닷컴에서 서비스하는 큐링은 백설공주와 왕자를 엽기적인 캐릭터로 변형했다. 이 게임에서 백설공주는 못생기고 뚱뚱한 ‘2살공주’로, 왕자는 음흉한 인상의 ‘백마 낀 왕자’로 디자인됐다. 캐릭터들이 사용하는 아이템도 엽기적으로 그려졌다. 컴온베이비는 귀엽고 장난스러운 보행기 애완동물 보드를 레이싱카로, 스매쉬스타는 프라이팬 우산 방망이 등을 테니스 라켓으로 각각 디자인했다.
○캐릭터들의 부가가치도 증가
심플하고 재미있게 디자인된 게임 캐릭터들은 부가 사업에도 응용되고 있다. 캐릭터 부가 사업을 활발하게 벌이는 넥슨의 최병량(카트라이더 디자이너) 팀장은 “SD 캐릭터들은 선 처리와 체형이 단순해 동작 아이템 표정 컬러 등에 쉽게 변화를 줄 수 있어 적용할 수 있는 제품 폭이 넓다”고 말했다.
넥슨은 수년 전부터 장난감 학용품 가방 의류 식료품 등 1500여 종의 상품에 크레이지아케이드비엔비 카트라이더 메이플스토리의 캐릭터들을 응용한 부가 사업을 해 왔으며 2005년 매출의 약 7%를 차지했을 정도로 고속 성장 중이다.
게임 캐릭터 상품의 가장 큰 고객은 초등학생들. 부산교대 하유진 씨는 “지난해 초등학교에 교생 실습을 나갔을 때 저학년 고학년, 남자아이 여자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카트라이더와 메이플스토리 캐릭터가 그려진 학용품을 쓰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청주 용암초등학교 5학년인 조휘웅 군은 “좋아하는 게임의 캐릭터가 그려진 학용품 장난감 인형 옷을 전문적으로 모으는 친구가 많다”고 말했다.
휴대전화 등에도 카트라이더 캐릭터를 활용한 제품들이 환영받고 있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 한솔고 1학년인 김다희 양은 “카트라이더의 배경 음악을 휴대전화의 벨소리나 컬러링으로 설정하는 아이가 많다”고 말했다.
○심플 캐릭터의 멈추지 않는 행진
캐주얼 게임의 인기는 계속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MMORPG에 비해 사용자의 폭이 넓기 때문이다. 리니지2는 유저의 70% 이상이 20, 30대 남성이다. 카트라이더는 10대와 20대가 각각 35%와 41%를 차지하지만 10대 미만과 40대 이상 유저도 각각 13%, 11%를 차지한다. 남성과 여성 유저 비율도 6 대 4 정도다. 개발 비용이 저렴하다는 것도 장점. 넥슨의 윤대근 홍보팀장은 “MMORPG를 개발하는 데는 평균 3년간 100여억 원이 필요하지만 카트라이더는 20개월간 30여억 원으로 현재의 성과를 낳았다”고 밝혔다.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의 박기수 교수는 “‘원 소스 멀티 유스’가 가능한 캐릭터 디자인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질수록 부가 사업에 쉽게 활용할 수 있는 SD 캐릭터와 이와 어울리는 캐주얼 게임 개발이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글=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그래픽=이진선 기자 geranu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