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붉은색을 테마로 한 패션 전시회. 크리스티앙 라크루아 씨(오른쪽)가 큐레이터를 맡았다. 사진 제공 크리스티앙 라크루아 씨
디자이너 크리스티앙 라크루아 씨가 올해 ‘파리 패션 위크’에 들고 나온 것은 ‘투우(鬪牛)’였다.
투우사에게 영감을 얻은 재킷과 휘황찬란한 드레스가 이번 컬렉션의 ‘포인트’. 붙박은 보석과 술, 정교한 자수도 눈길을 사로잡았다.
라크루아 씨는 “내 고향 남부 프랑스는 투우의 고장”이라며 “투우는 내 속에 깊이 뿌리내려 있다”고 말했다.
‘색채의 마술사’ ‘패션의 귀재’ ‘창조를 위한 연금술사’….
이 칭송받는 디자이너를 수식하는 말도 그의 옷처럼 화려하다. 그러나 그는 화려함보다 ‘프로방스와 집시의 전통에 흠뻑 빠졌던 외로운 어린 시절’의 추억을 현실에서 디자인으로 구현해내고 있다.
그를 e메일로 만났다.
―당신의 영감은 어디에서 오나요.
“남부 프랑스 지방에서 보낸 유년기와 예술을 공부하던 시절, 그리고 삶의 가장 누추한 기억부터 전시회, 영화, 책, 신문, 사진, 빈티지 패션…. 매일 매일의 모든 것, 주변 환경에서 영감을 얻지요. 어떤 건 때로 설명할 수 없기도 하죠.”
유년시절 그의 관심사는 투우 경기, 오페라 페스티벌, 아트 갤러리, 다락방에서의 독서였다. 그는 영국의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 ‘비틀스’, 그리고 스페인 바르셀로나와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대한 열정이 자신을 키웠다고 말한다.
프랑스의 대표 상품 중 하나인 고속열차 TGV의 인테리어. 크리스티앙 라크루아 씨가 디자인했다. 사진 제공 크리스티앙 라크루아 씨
―디자인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점은….
“당대 패션의 깊은 흐름과 실제 옷을 입는 사람들이 연계될 수 있는 디자인을 제시하려고 합니다. 패션 피플과 언론, 고객 모두를 만족시키는 일은 흥미로우면서도 늘 어려운 도전이 되곤 하죠. 그래서 전 깊은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비전과 확신에 충실하려고 해요.”
마크 제이콥스(미국), 카를 라거펠트(독일), 존 갈리아노(영국) 등 해외파 디자이너들이 득세한 ‘패션의 본고장’에서 라크루아 씨는 ‘프렌치 스타일’을 대변하고 있다.
그가 디자인한 ‘에어 프랑스’의 유니폼은 우아하면서도 다양한 문화적 요소를 담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고몽’의 멀티플렉스 극장(2005년)과 프랑스를 대표하는 고속열차 TGV의 인테리어 디자인(2000, 2004년)도 그의 작품이다.
―‘라크루아 디자인’의 원천은 무엇입니까.
“음악, 사회현상, 사진 등 모든 현존하는 흐름을 파악하는 것에서 쾌감과 흥분을 느낍니다. 이것이 옷으로 변형되지요. 매년 매 시즌 세상에 대한 비전을 다시 정리하고 숙고하면서 새로운 도전을 찾아 나섭니다. 이처럼 끊임없는 일상의 자극이 원심력을 형성하고 이런 것들이 점점 더 빨라져서 저를 더욱 강하게 합니다.”
그러나 그는 ‘명성’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명성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입니다. 명성을 추구하기 보다 다른 사람의 취향과 생각, 트렌드를 이루는 무리의 일부로 살아가는 게 더 중요합니다. 사람은 늘 현실과 판타지의 조화를 유지해야 합니다. 상아탑 안에 갇혀 있거나 순간순간의 유행을 따라가지 말고 스스로에게 진실해야 하는 것이죠.”
―무엇이, 누가 파리를 ‘패션의 수도’로 만드는 것일까요.
“파리는 패션의 촉매이자 교차로가 아닐까요. 파리의 힘은 화려하고 오트 쿠튀르적이며 절묘한 패션 성향에 가까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치스러울 정도로 말이죠. 또 지리적으로는 미국적인 비즈니스와 이탈리아의 텍스타일 산업, 영국의 창조성을 혼합하고 현실화시킬 수 있는 최적의 도시죠. 이것이 수많은 브랜드와 디자이너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일 겁니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