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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이대로 둘 것인가]⑤국가에만 기대지 말라

입력 | 2006-03-28 03:00:00


《“최근 조사에서 가입자의 3%만이 각 민간 연금관리기관(AFP)의 수수료를 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소비자가 가격이 얼마인지도 모르면서 빵을 사는 꼴입니다. 칠레에서도 연금 민영화에 대해 논란이 많습니다.”(칠레대 경제학과 다비드 브라보 교수)

칠레 연금제도는 민영화의 대표적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한때 세계은행이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각국 연금개혁에 적극 참조하라고 권장하기도 했던 방식이기도 하다. 칠레의 신임 오스발도 안드라데 노동사회보장부 장관은 “25년간의 운영 결과 민영화는 빈곤층에 대한 보장이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인정하면서 “약점을 보완하겠지만 큰 틀은 그대로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칠레처럼 노후 대책에서 공적연금의 비중은 줄고 개인의 책임이 늘어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다. 》

유럽 각국과 미국 일본 등 연금 선진국들은 공적연금만으로는 고령화 사회에 대처할 수 없다고 판단해 퇴직연금(기업연금) 및 개인연금 등을 보완 수단으로 적극 권장하고 있다. 세제 혜택, 보조금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한국의 연금제도가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를 미리 보여 주고 있는 셈이다.

○ 노후에 대한 개인의 책임 강조는 대세

독일 스위스 일본은 국민이 개인연금에 가입하면 세금 감면이나 보조금 지급 등 각종 혜택을 주고 있다.

이탈리아는 직장인 본인이 스스로 개인연금 가입을 거부하겠다고 말하기 전에는 모두 기업연금에 가입하도록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이탈리아 기업연금 기금감독위원회 암브로조 리날디 씨는 “공적 연금 재정에 이탈리아에서는 개인연금의 비율이 점점 더 높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2004년 연금개혁의 요체는 ‘적정한 급여수준 보장’에서 ‘지속가능한 연금’으로의 전환이다. 경제성장률이 떨어지고 노인 인구가 계속 늘면 연금도 따라 줄이는 자동장치를 도입했다.

연금제도 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공적연금의 혜택을 줄일 수밖에 없고 부족한 부분은 개인이 알아서 책임지라는 의미다.

○ 기금 운용의 민영화

스웨덴은 출산휴가가 480일에 이르는 복지천국이다. 노후 연금에 대해서도 정부가 대부분 책임을 져 왔다. 기초연금, 소득비례연금(ATP) 등 모든 연금을 정부가 거두고 운용하고 지급했다.

그러나 1998년 개혁 이후에는 확 달라졌다. 개인의 어깨에 좀 더 많은 책임을 떠넘겼다.

초과연금(PPR) 적립제 도입이 대표적 사례이다.

가입자는 소득의 18.5%인 연금보험료 가운데 2.5%를 정부가 제시한 700개 펀드 가운데 한 곳에 투자하는 방식이다. ‘고수익 고위험’ 또는 ‘저수익 저위험’ 펀드 중 어느 펀드에 투자할지는 개인의 선택이다. 그 결과 연금 수급액이 달라지는 것은 개인의 책임이다.

펀드 모두 운용과 관련해서는 정부의 직접 간섭이 거의 없다. 정부는 기본 지침만 내릴 뿐이다.

초과연금청(PPM)의 재정담당자인 울레 실빈 씨는 “지난해 정부 지침의 핵심은 기금운용 수수료를 낮추고 대(對)국민 홍보를 잘 하라는 것뿐”이었다고 설명했다.

○ 민영화에 따른 부작용과 반발

스웨덴은 민간 금융업체들의 과잉 경쟁으로 홍보비 등 초과연금 제도의 비용이 엄청났다.

제도 도입 첫해인 1998년 펀드 홍보에 든 돈은 5억 크로나(약 70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는 민간업체들이 연간 펀드 운용으로 버는 돈의 두 배를 웃도는 수준이다.

칠레도 광고료, 관리비 등의 부담으로 민간운용기관의 수수료가 2.5∼3%에 이른다. 기금 운용 수익률이 6% 정도인데 비해 상당히 높은 편이다.

또 출범 당시 18곳이었던 민간 연금관리기관이 6곳으로 줄어 앞으로 경쟁을 촉진시키고 수수료를 낮추는 것도 칠레 연금개혁 과제다.

다비드 브라보 칠레대 교수는 “관리기관을 더 늘리거나 은행 등 일반 금융기관에도 연금운용의 문호를 개방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은 연금의 일부 민영화 계획이 난관에 봉착한 상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지난해 2월 사회보장세 12.4% 가운데 4%를 개인이 투자토록 하는 내용의 개혁안을 마련했다.

이에 대해 “국민의 노후를 주가의 도박에 맡긴다”는 민주당과 일부 공화당 의원의 강력한 반대로 개혁안 추진이 한풀 꺾였다.

○ 한국의 적립식 연금에 대한 비판

독일경제연구소(DIW) 및 베를린공대 게르트 바그너 교수는 “한국처럼 적립식으로 연금을 운영하고 연금 적립기금의 대부분으로 정부 채권을 구입하는 것은 ‘사기’”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제대로 된 적립식 연금제도가 되려면 국채 매입뿐 아니라 다양한 투자를 통해 수익을 올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정부가 나중에 돈을 줘야 할 때 중앙은행을 통해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면 돈의 가치가 떨어지게 된다”면서 “독일도 과거 유사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라고 덧붙였다.

이탈리아의 카시노대 세르지오 니스티코 교수는 “한국처럼 연금기금을 운영하면 축적된 거대 자본이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면서 “‘연못 속의 고래’가 튀기는 물 때문에 사회 전반적으로 불안해지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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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

반병희 차장 bbhe424@donga.com

▽일본 칠레

김광현 기자 kkh@donga.com

▽프랑스 스웨덴

이은우 기자 libra@donga.com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칠레 안드라데 노동사회부장관 “연금개혁 25년간 많은 시행착오 민영화 후 재정파탄 우려 사라져”

“연금제도 자체를 처음부터 완전히 뒤바꿀 수는 없다. 민영화 모델의 허점으로 드러난 여성과 청년 실업자, 저소득층에 대한 배려를 늘릴 것이다. 또 민간 연금운용기관들의 수를 늘리고 경쟁을 더 할 수 있도록 유도하겠다.”

이달 11일 출범한 칠레의 미첼 바첼레트 대통령 정부와 함께 입각한 오스발도 안드라데 노동사회보장부 장관은 25년을 맞는 연금제도에 대한 손질을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칠레는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군정 시절이었던 1981년 세계 최초로 공적연금을 민영화한 ‘신연금법’을 제정했다. 그리고 이를 위한 민간 연금기금 관리회사(AFP)가 설립됐다.

1989년 피노체트가 실각하고 반(反)군정파였던 파트리시오 아일윈 대통령이 집권했으나 피노체트의 신자유주의 정책은 그대로 계승했다.

안드라데 장관은 “군사정부가 도입했지만 적립식 민영화 방식으로 약 300억 달러의 투자재원이 마련돼 경제성장에 큰 도움이 됐고 연금 재정 파탄의 우려도 사라졌다”고 평가했다.

그 이전에는 국민들이 국가가 자신들의 노후를 책임져 줄 것으로 생각했으나 민영화 이후 노후복지에 대한 근본적인 개념이 바뀌었다는 설명이다.

그는 또 “AFP 제도는 당초 민간 자율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으나 최근에는 가입대상자의 절반이 연금을 내지 못해 국가가 보조해 주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면서 “민간 제도가 무너지면 결국에는 국가 부담으로 돌아온다”고 말했다.

그는 “AFP의 수수료가 너무 높고, 실업자에게도 수수료를 받을 정도로 방만하게 운영되고 있다”면서 “정부, 학계, 기업, 노조 등에서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는 만큼 의견을 수렴해 확실히 문제점을 고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칠레의 국민연금 민영화는 다른 나라에는 하나의 실험무대였던 만큼 한국은 25년 실험결과를 분석해서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