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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65년 중학입시 복수정답 인정 판결

입력 | 2006-03-30 03:04:00


다음은 엿을 만드는 순서를 차례대로 적어 놓은 것이다.

①찹쌀 1kg가량을 물에 담갔다가 ②이것을 쪄서 밥을 만든다 ③이 밥에 물 3L와 엿기름 160g을 넣고 잘 섞은 다음에 60도의 온도로 5∼6시간 둔다.

위 ③에서 엿기름 대신 넣어도 좋은 것은 무엇인가?

1964년 12월 7일 실시된 서울지역 전기(前期) 중학교 입시의 자연 과목 18번 문제. 그로부터 며칠간 신문 사회면 톱기사로 장식됐던 ‘문제의 문제’.

서울시공동출제위원회가 제시한 정답은 보기 1번 디아스타아제. 보기 2번 무즙을 선택한 수험생의 학부모들이 들고 일어났다. 초등학교 자연 교과서에 ‘침과 무즙에도 디아스타아제가 들어 있다’고 적혀 있다는 것. 당연히 무즙도 정답이라는 주장.

중학교 합격자 명단이 발표되면 신문사에서 즉각 호외를 내던 시절. 학부모들은 ‘이 문제 하나가 내 자식의 인생을 좌우한다’고 여기고도 남았다.

이 무즙 파동에 대한 동아일보의 당시 사설(12월 9일자 2면).

“무즙으로 엿을 만드는 실험까지 해 본 학부모가 있다고 한다. 서울시내는 이 문제로 온통 떠들썩한 상태이다. 합격자 발표를 연기하는 일이 있더라도 신중한 재검토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교육 당국은 스스로 화를 키웠다. 입시 다음날(12월 8일)에는 ‘아무 문제없다’고 했다가 파문이 계속되자 다시 하루 만(12월 9일)에 ‘18번 문제를 무효로 한다’고 발표했다.

이번에는 ‘디아스타아제 학부모’들이 서울시교육청에서 농성을 벌였다. ‘정답대로 쓴 사람은 떨어지고 잘못 썼거나 아무것도 안 쓴 사람이 붙게 된다’는 아우성이었다.

교육 당국은 또 번복했다. ‘원래대로 디아스타아제만 정답으로 인정한다.’

이 논란은 법정 공방 끝에 1965년 3월 30일 간신히 막을 내렸다. 서울고법 특별부가 “무즙도 정답으로 봐야 한다. 이 문제 때문에 불합격한 39명을 구제하라”는 판결을 내린 것.

당시 동아일보 4컷 풍자만화 ‘고바우 영감’은 자연 과목의 한 문제 때문에 갈팡질팡한 교육 당국을 칠면조(七面鳥)에 비유했다.

“자연이란 자꾸 달라지는 겁니다! 자 이 (칠면조의) 푸른 얼굴을 보세요/(금방) 빨갛게 달라졌습니다. 앞으로 일곱 번 달라집니다.”

최근 자립형사립고 확대 문제에 대한 말 바꾸기 논란을 낳은 현 교육 당국은 과연 이 풍자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가.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