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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록 로비 파문]현대車 “최악 시나리오인가” 전전긍긍

입력 | 2006-03-30 03:04:00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 그룹의 명운(命運)이 걸린 듯한 느낌이다.”

‘금융브로커’ 김재록 씨에 대한 검찰 수사가 점차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의 심장부를 겨냥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자 현대차그룹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29일 검찰이 “지금까지 수사가 김씨 로비와 관련한 ‘원 트랙’이었다면 앞으로는 현대차그룹 비자금을 포함해 ‘투 트랙’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밝히자 현대차그룹은 충격에 빠졌다.

현대차그룹 임직원들은 수사가 어디까지 확대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최대의 위기”라는 말로 불안감을 표시했다.

정몽구 그룹회장, 정의선 사장의 집무실을 수색하고 채양기(蔡良基) 기획총괄본부장(사장)을 소환 조사한다면 사실상 그룹의 모든 정보를 검찰이 확보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채 본부장이 맡고 있는 그룹 기획총괄본부는 계열사 간 중복사업을 조율하고 중장기사업 전략 수립, 기업 인수합병(M&A), 대정부 업무, 각종 정보 수집, 자금 조달 등의 업무를 맡고 있다. 다른 그룹의 구조조정본부 역할인 셈이다.

채 본부장은 정 회장의 핵심 측근이다. 1978년 현대자동차에 입사해 주로 재무 분야를 담당해 왔다. 1998년 이사 대우 승진 이후 7년 만인 지난해 5월 기획총괄본부 사장으로 초고속 승진했다. 고 정주영(鄭周永) 현대 창업주가 1992년 대선에 출마했을 때는 통일국민당 법률지원단장을 맡았다.

따라서 “그룹 사정을 꿰뚫고 있는 채 본부장의 조사 결과에 따라 그룹 전체의 비자금 조성 의혹을 파헤치는 수사로 확대될 수 있다”는 관측이 안팎에서 나온다. 총수 일가를 포함한 최고위층에 대한 소환 조사도 예상된다는 분석이다.

이미 현대차그룹 내부에서는 수사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고위 임원들은 정 사장 자택 압수수색 등으로 수사의 초점이 ‘오너’ 일가로 향할 조짐을 보이자 대책을 논의하기도 했다.

비자금을 조성한 글로비스 관계자뿐 아니라 현대차 본사의 ‘자금줄’을 관리하는 정태환(鄭泰煥) 재경본부 상무를 첫날부터 소환 조사한 것도 심상치 않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검찰이 정 회장과 정 사장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는 하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이런 상황에서 해외 출장을 갈 수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현대차그룹의 납품 단가 인하 요구와 관련해 법 위반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혀 사면초가 상황이다.

정 회장은 이날까지 사흘째 출근하지 않았다. 극소수 측근 외에는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있다. 정 사장은 28일 오전 잠시 출근한 뒤 바로 퇴근했으며 29일에는 출근하지 않았다.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