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보라를 동반한 강한 터뷸런스(turbulence·난기류) 입니다."
28일 오후 5시40분경 동해 울릉도 인근 해상 400m 상공. 해군 제6전단 소속 해상초계기P-3C의 조종간을 잡은 이진용(李眞鏞) 중령을 비롯한 대원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륙전 일기예보를 통해 예상은 했지만 울릉도 해상의 기상상태는 베테랑 조종사들도 긴장할 만큼 심각했다. 휘몰아치는 강풍으로 기체는 심하게 요동쳤고 사방은 온통 먹구름이 끼어 시계(視界)도 최악의 상황. 창 밖 아래에는 5m 이상의 파고가 허연 포말을 일으키는 성난 바다가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해상 초계체험을 위해 동승한 기자의 손과 등에서도 식은땀이 배어나왔다. 1시간 전 포항기지를 이륙해 부산항 해상에 도착했을 때의 화창했던 봄 날씨와는 딴판이었다. 기체와 대원들의 안전을 책임진 '현장 지휘관'으로서 이 중령이 결단을 내렸다.
"울릉도 임무는 취소하고 독도로 간다. 고도 5000피트 상승한 뒤 전속력 비행", 이 중령의 명령 직후 기체는 곧바로 급상승해 악천후 지역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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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살았다'는 안도감도 잠시 불안정한 기류(氣流) 때문에 기체는 심하게 흔들렸다.
"독도 상공도 이런 악천후라면 임무를 취소하고 귀환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 중령의 얼굴에 착잡함이 묻어났다. '국토의 막내'를 눈 앞에 두고 기수를 돌리는 일이 없길 다른 대원들과 함께 간절히 기원했다.
오후 6시10분경, 독도 상공에 다다른 P-3C는 천천히 고도를 낮췄다. 먹구름 층을 통과하자 검푸른 수평선 가까이 희미한 섬의 윤곽이 보였고 잠시 뒤 손을 뻗으면 닿을 듯 독도의 장엄한 정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오랜 세월 목숨 바쳐 자신을 지켜준 선조들처럼 강풍과 눈보라를 뚫고 날아온 해군 대원들에게 독도는 비바람속에서도 의연한 자세로 '정말 잘 와주었다'며 환영 인사를 건네는 듯 했다.
조선 숙종때 홀홀단신으로 독도로 건너가 일본인들을 쫓아낸 안용복 선생, 6·25 전쟁의 틈을 타 독도를 점령하려는 일본 해경과 격전을 치른 33명의 독도의용수비대원들의 헌신과 조국애가 가슴에 절절이 전해져왔다.
강풍도 다소 잠잠해져 P-3C는 독도 상공 300m까지 접근해 주위를 선회하며 초계임무를 수행했다. 독도 초계임무는 일본 순시선과 어선들의 접근을 포착하는 게 관건이다.
위기를 넘기고 국토의 동쪽 끝까지 다다랐다는 자부심으로 대원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하지만 예정된 초계임무는 아직 3시간이나 남아있었다. 대원들은 준비해 온 도시락으로 서둘러 식사를 마친 뒤 독도를 뒤로 하고 기수를 북으로 돌렸다.
잠시 뒤 북방한계선(NLL) 남쪽 10마일 상공까지 접근한 P-3C는 각각 조종석 앞쪽과 아래에 탑재된 레이더와 적외선 열상장비(IRDS)를 가동해 인근 해상을 오가는 선박들의 식별에 나섰다. 이 장비는 수면과 함정의 온도 차이를 감지해 대강의 선박형태까지 잡아냈다.
"여기는 대한민국 해군입니다. 귀 선박의 국적과 선명을 밝혀주십시오". P-3C의 무선통신을 받은 선박들은 즉시 답변해야하고 경우에 따라 초계기는 70m까지 하강해 선박을 식별하게 된다.
'단골 식별대상'인 북한 선박이 남북이 합의한 항로를 이탈하거나 지시에 불응할 경우 절차에 따라 대응 수위를 높이게 된다고 대원들은 말했다.
칡흙같은 밤하늘에서도 P-3C는 첨단 추적장비와 레이더로 반경 수백km내 최대 250여개의 목표물을 추적 식별할 수 있다. 기체내 탑재된 수 개의 레이더 화면에는 주변 해역을 지나는 모든 함정의 종류와 항로가 실시간으로 포착됐다.
이처럼 전천후 성능을 가진 P-3C의 진가는 공군 전투기나 해군 함정의 출동이 힘든 악천후에 더욱 빛을 발한다.
조종사인 박일수 소령(해사 47기)은 "악천후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영토를 수호하는 '파수꾼'은 초계기가 유일하다"며 "전 대원이 대한민국의 '불침번'이라는 자부심으로 묵묵히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밤 9시경 모든 임무를 마치고 기지 상공에 다다르자 포항 시내의 야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잠시 뒤 어둠을 헤치고 기체가 활주로에 안착하자 대원들은 "오늘도 나라를 잘 지켰다"는 덕담을 주고 받으며 서로의 어깨를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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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상공=윤상호기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