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창간특집/작지만 강한 대학]美 애머스트大

입력 | 2006-03-31 03:02:00

미국 매사추세츠 주 애머스트대에서 학생들이 캠퍼스를 가로질러 걸어가고 있다. 캠퍼스가 120만 평이나 되는 애머스트대의 학생과 교직원은 2400여 명에 불과하다. 애머스트=권순택 특파원


《“21세기 들어 대학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이제 대학이 세계를 형성하고 지속성을 유지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30일 고려대에서 열린 싱가포르대 시춘퐁 총장의 아시아태평양국제교육협회 연설) 대학의 경쟁력은 곧 그 나라의 경쟁력이자 미래이다. 대학은 시대를 이끌어 갈 인재를 공급하고 나라를 먹여 살릴 자원을 제공한다. 정원을 채우기조차 어려워진 상황에서 한국 대학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따라서 한국 대학의 구조 개혁 또한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가 되어 버렸다. 일찌감치 세계화에 눈뜬 외국의 대학들은 이미 이런 과정을 거쳐 경쟁력 있는 교육 체제를 구축하고 세계의 인재를 끌어 모으고 있다. 본보는 창간 86주년을 맞아 한국 대학의 구조 개혁에 시사점을 던지기 위해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경쟁력 있는 외국 대학을 현지 취재해 시리즈로 소개한다.》

▶ 美 애머스트大 화보보기

27일 낮 미국 애머스트대 캠퍼스 내 전쟁 기념물 계단에서 모처럼 야외강의가 진행됐다.

일란 스타반스 교수의 이날 스페인 문학 야외강의에는 모두 7명의 학생이 참석했다. 교수는 학생들과 함께 계단에 앉아 수업을 진행했다. 교수가 가끔 계단에 드러눕기도 할 정도로 격의 없는 분위기였다.

날씨가 좋을 때면 캠퍼스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광경이다. 강의 시간이 아니라도 교수들은 강의실 밖에서 학생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한다.


전교생이 1640명인 애머스트대의 교수 대 학생 비율은 1 대 8. 전체 강의의 72%가 20명 미만의 학생을 대상으로 이뤄진다. 대부분의 교수가 연구보다는 강의에 더 열성적이고 대학 측도 교수와 학생들의 인간적인 만남을 적극 권장한다.

대표적인 ‘작지만 강한’ 대학으로 꼽히는 애머스트대는 이처럼 교수와 학생이 친밀하고 인간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대학으로 유명하다.

학교 앞 스타벅스에서 만난 철학과 2년 미라 커저(19) 씨는 “베이비시터로 교수님의 아이들을 돌봐주는 학생이 있을 정도로 교수들과 친밀하게 지낸다”고 말했다.

필수 교양과목을 없앤 ‘오픈 커리큘럼’은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제도. 토머스 파커 입학재정지원처장은 “오픈 커리큘럼은 매우 생산적이어서 학생들이 복수 전공을 하는 데 유리하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졸업생 409명 중 133명이 복수 전공자였다.

파커 처장은 “3학년생의 35%가 한두 학기 동안 150∼160개 외국 대학에 유학하는 것도 오픈 커리큘럼의 효과”라고 설명했다.

애머스트대 캠퍼스 중앙에 위치한 존슨채플 건물. 애머스트=권순택 특파원

대학생들의 고민거리 가운데 하나가 전공 선택이다. 애머스트대에서는 2학년 말까지만 전공을 결정하면 된다. 그 후에도 전공을 바꾸는 것이 어렵지 않을 만큼 융통성이 있다.

애머스트대는 1965년 구성한 비영리 교육 컨소시엄 덕분에 작은 대학과 큰 대학의 장점을 모두 살리고 있다. 반경 9km 안에 모여 있는 매사추세츠대 애머스트 캠퍼스, 스미스대, 마운트 홀리오크대, 햄프셔대와 상호 학점 인정과 교수 교환 및 공동 문화행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무료 셔틀버스가 30분마다 5개 대학을 연결해 5개 대학 학생들은 교수 2000여 명, 장서 900만 권, 5000개 과목을 공유하는 초대형 대학에 다니는 혜택을 보고 있다.

1821년 개교 당시 47명의 학생으로 출발한 애머스트대는 지금 미국에서 가장 작은 최고 명문대로 통한다. 매년 발표되는 인문학 대학 순위에서는 윌리엄스대와 1, 2위를 다투고 있다. 애머스트대는 제1차 세계대전 후에 1000명에서 1200명으로, 1980년대에 1600명으로 학생 수를 늘렸지만 지난 20년 동안 현상 유지하고 있다.

외국 유학생과 가난한 집안 자녀들이 더 입학할 수 있도록 정원을 늘리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지만 증원 규모는 고작 120명이다.

파커 처장은 애머스트대의 성공 비결로 △교통의 중심지라는 지리적 조건 △졸업생들의 높은 기여도 △꾸준한 교육환경 개선 노력을 꼽았다.

애머스트대 졸업생의 68%는 매년 모교에 기부금을 낸다. 이를 포함한 애머스트대의 학교기금 12억 달러는 총액 기준으로는 미국 대학 가운데 46위에 해당한다. 하지만 학생 1명당 기금(71만2000달러)은 총액 순위 22, 24위인 다트머스대(47만 달러)와 브라운대(26만3000달러)보다 많다.

학생 1명이 매년 수업료와 기숙사비 등으로 부담하는 비용은 4만5000∼4만7000달러. 그러나 실제로 학생 1명에게 들어가는 비용은 6만9000달러나 된다는 게 폴 스태트 미디어과장의 설명이다. 결국 1인당 2만 달러 이상을 학교가 부담한다는 것. 대학의 기금이 많아야 할 뿐만 아니라 학생 증원이 쉽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애머스트대의 성공 요인으로 학생 중심의 학교 운영과 다양성을 추구하는 전략을 빼놓을 수 없다. 2021년 개교 200주년을 위한 발전 방안 보고서는 △지원자의 다양화 △커리큘럼의 혁신 △커뮤니티 서비스와 인턴십 강화 등을 강조했다.

재학생 1640명은 미국의 거의 모든 주와 40개국에서 온 외국인으로 구성돼 있다. 유색 인종이 33%나 되고 신입생의 6∼8%가 유학생이다. 98%의 학생이 4년 동안 기숙사 생활을 하므로 다양한 인종과 국민을 이해하고 공존하는 지혜를 터득하는 기회가 된다.

파커 처장은 “세계가 더 좁아지고 상호 의존도가 강화되는 만큼 외국 유학생 비율을 8∼10%까지 늘려야 한다는 제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애머스트대 설립자 중에는 웹스터 영어사전 집필자인 노아 웹스터가 있다. ‘가지 않은 길’로 유명한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1916년부터 40여 년 동안 영문학을 가르쳤다.

애머스트=권순택 특파원 maypole@donga.com

▼한국인 학생 40여명 “너무 자상한 교수님”▼


“교수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자상한 지도를 받을 수 있고 전인교육이 가능하다는 게 가장 좋아요.”

27일 애머스트대에서 만난 4명의 한국인 학생은 대학 생활에 상당히 만족하고 있었다. 이 대학에는 한국 유학생 14명과 재미교포 학생 30여 명이 재학하고 있다.

민족사관고 출신의 최지현(崔志賢·22·3학년) 씨는 영문학을 공부할 예정이었지만 정치학과 경제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스페인과 미국에서 초중고교를 다닌 차상윤(車相潤·21·3학년) 씨는 경제학과 수학을 전공한다. 대원외고 선후배간인 조애리(23·4학년) 최근우(崔根宇·21·2학년) 씨는 각각 생물학과 경제학이 전공이다. 이들 중 3명은 아이비리그의 입학 허가서를 받고도 애머스트대를 선택했다.

이들은 1학년 때 세미나를 제외한 교양 필수과목이 없고 전공 선택이 자유로운 것을 장점으로 꼽았다.

교수와 대면하거나 지도를 받을 수 있는 다양한 기회가 있다는 것도 애머스트대의 매력. 학생이 개인적으로 배우고 싶은 과목을 제시해 교수가 동의하면 일대일 수업이 가능하다. 3∼8명의 학생이 교수를 식사에 초대하면 학교가 비용을 부담하기도 한다.

조 씨는 “교수와의 면담이나 전화 통화가 자유롭고 e메일로 질의해도 답장을 보내 준다”면서 “교수에게서 식사 초대를 받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은 졸업논문. 4학년 때 1년 정도 걸려 논문을 작성하는데 석사 학위 정도의 수준을 요구한다. 10명의 교수 앞에서 논문을 발표하고 구두시험에도 통과해야 졸업할 수 있다.

불만은 없을까? 대학 분위기가 진보 편향이라서 보수적인 학생은 불편할 수 있다는 것, 캠퍼스 외곽의 배후시설이 부족한 것, 학생이 많지 않아 사생활 보호가 어려운 것(?) 등이 학생들이 꼽은 아쉬운 점이다.

애머스트=권순택 특파원 maypole@donga.com

▶ 美 애머스트大 화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