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도시의 위기와 변화/최완규 엮음/325쪽·2만2000원·한울아카데미
1990년대 ‘고난의 행군’기에 북한에서는 어떤 변화가 발생했을까. 이 책은 북한과 중국의 국경도시인 청진, 신의주, 혜산 3개 도시 출신의 탈북자들에 대한 심층면접조사를 바탕으로 그 변화의 구체적 양상을 추적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의 공동연구의 산물이다.
저자들은 이를 ‘시장적 공간’의 확산과 ‘정치의 경제화’로 요약하고 있다.
기존 북한 사회주의 도시 정치는 ‘권력체제-공장체제-지역체제’의 공고한 결합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그 틈 사이로 장마당과 암시장을 포함한 시장적 요소가 자리 잡으면서 기존 3체제는 이완·분리되고 있다는 것이다.
장마당은 1980년대까지 주민의 생계유지활동을 보조하는 역할에 그쳤다. 그러나 식량난으로 인해 지역체제가 보장하던 배급이 유명무실해지고 장마당이 생계유지활동의 중요 장으로 등장하면서 도시생활의 주요무대로 변했다. 공장과 기업소도 정부로부터 배급받던 자재를 장마당과 야시장을 통해 공급받게 됐다.
행정경제사업에 대한 당의 지도는 크게 약화됐다. 이는 돈을 벌어 경제력을 가진 인사들의 입당(入黨)이 쉬워졌다는 변화에서도 관측된다.
지방에 있는 공장이 사실상 가동 중단에 들어가면서 종업원들은 뿔뿔이 흩어져 자체 생존을 모색하게 됐다. 서로 다른 지방끼리 필요한 물자를 교환하는 지방무역이 등장하면서 사적 관계망의 확대를 낳았다.
결국 이 같은 변화를 통해 북한 도시는 집단주의적 형식주의와 개인주의적 실용주의로 이분화된 사회로의 이행을 경험하고 있으며,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추동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