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치기는 지겨워/다비드 칼리 글·에릭 엘리오 그림·심지원 옮김/24쪽·7000원·비룡소(5∼초등 1년)
이 책을 읽는 아이는 두 가지 이유로 깔깔댄다.
주인공 아이가 자신과 너무 똑같아서, 그리고 주인공 엄마가 실제 엄마랑 너무 흡사해서.
이 책을 읽어 주던 엄마도 두 가지 이유로 낄낄댄다.
책 속의 엄마 모습이 꼭 자신을 보는 것 같아서, 그리고 책 속 아이의 행동이 자신의 어렸을 때와 똑같아서.
“마르콜리노는 날마다 3시가 되면 피아노 연습을 시작해요. 그러다 3시 13분이면 피아노 의자에서 내려와 TV를 켜요. 엄마는 3시 14분에 소리쳐요. ‘지금 뭐하는 거니? 당장 피아노 앞으로 돌아가지 못해!’ 마르콜리노는 고개를 숙인 채 피아노 앞으로 돌아가 다시 연습하죠. 하지만 3시 18분에 주먹으로 피아노 건반을 내리쳐요.”
피아노 치기를 지겨워하는 아이에게, 그리고 그런 아이에게 잔소리를 하느라 힘든 엄마에게 강추(그런 아이와 엄마일수록 더 많이 웃을 수 있다).
“연습 안 하면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될 수 없다”고 윽박지르던 엄마는 슬쩍 거짓말도 한다. “엄마는 너만 했을 때 몇 시간씩 연습하곤 했다니까.” “근데 왜 엄마는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되지 못했어요?” “…네가 태어나서 연습할 시간이 없었거든.”
하지만 아이가 정말로 되고 싶은 건 훌륭한 카레이서, 훌륭한 소방관, 훌륭한 마술사, 훌륭한 곡예비행사, 훌륭한 해적…. ‘훌륭한 피아니스트만 빼고 뭐든지’다.
이 책은 좋은 그림책의 조건을 두루 갖췄다. 아이와 엄마가 함께 보면 더 좋고, 먼 나라 작가가 쓴 이야기지만 주인공 아이 이름만 바꾼다면, 딱 나와 내 아이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유머러스한 이야기 속에서 자녀 욕심 때문에 종종 엄마들이 저지르는 잘못을 깜찍하게 비판한 메시지까지….
외할아버지가 보여 준 엄마의 어린 시절 사진 때문에 엄마의 거짓말이 들통 나는 부분에선 아이는 신이 나서 웃고 엄마는 같이 깔깔대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찔려 온다. 만화풍의 삽화도 내용과 잘 어울린다. 덤으로 느끼는 재미 하나. 그림 한구석에 항상 등장하는 고양이의 표정도 놓치지 말 것!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