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1984’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집약한 기호였다. 소설가 조지 오웰이 1949년에 발표한 동명의 소설에서 전체주의의 디스토피아가 도래할 미래의 시간대로 1984년을 지목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막상 1984년이 다가오자 오웰의 음울한 예언은 테크놀로지에 대한 문화적 상상력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먼저 포문을 연 것은 전위 예술가 백남준이었다. 1984년 새해 벽두 그는 인공위성 프로젝트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통해 마치 빅 브러더의 세계에서 게릴라전을 펼치듯 세계 TV를 일시적으로 점거하고 이미지와 사운드의 기이한 조합으로 시청자들의 얼을 빼놓았다. 마셜 맥루한의 ‘지구촌’이 거대한 갤러리의 형태로 현실화되는 순간이었다.
텔레비전은 오웰에게 인사를 전하기엔 더할 나위 없는 장소였다. 오웰의 소설에서 텔레비전은 빅 브러더가 시민의 일거수일투족을 응시하는 감시의 도구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 사용자와 ‘대화’하는 매킨토시
그리고 며칠이 지난 후 게릴라전의 무대는 텔레비전 브라운관에서 컴퓨터 스크린으로 옮겨 갔다. 그 주인공은 스티브 잡스(애플 컴퓨터 창립자)가 이끄는 사과 군단이었다. 애플은 백남준의 유머에 화답하듯 슈퍼볼 중계방송에서 독특한 광고를 내보냈다.
영국왕립예술학교(RCA) 출신의 리들리 스콧 감독이 만든 이 광고는 굳은 표정의 시민들이 극장에 앉아 대형 스크린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는 장면으로 시작했다. 극장 내부는 숨막힐 듯한 폐쇄적인 분위기이고 스크린에선 빅 브러더가 무언가를 연설하고 있다. 그때 갑작스럽게 금발의 여성이 경찰의 제지를 뚫고 강당으로 뛰어 들어와 스크린을 향해 해머를 던졌다. 스크린이 해머에 맞아 산산조각 나는 순간, 한 메시지가 흘러 나왔다. 그것은 매킨토시라는 새로운 컴퓨터가 오웰의 어둔 예측과는 전혀 다른 미래상을 제시해 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매킨토시는 단순히 성능 좋은 컴퓨터가 아니었다. 그것은 컴퓨터 사용의 일상화를 주도할 새로운 개념의 디자인을 담고 있었다. 이전까지 컴퓨터 스크린은 종횡으로 스크롤되는 문자와 데이터의 독무대였다. 그저 사용자의 입력을 기다리는 커서만이 주인 없는 등대처럼 깜박거릴 뿐이었다. 매킨토시는 빈혈에 시달리던 스크린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었다. 중첩 윈도, 아이콘, 마우스, 팝업 메뉴를 중심으로 한 그래픽유저인터페이스(GUI)는 컴퓨터라는 친구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창’으로 스크린을 변모시켰다.
○ 어린이 교육용으로 시작한 아이콘
이는 같은 해에 윌리엄 깁슨이 사이버펑크 소설 ‘뉴로맨서(Neuromancer)’에서 묘사한 ‘사이버스페이스’의 개념과 절묘한 대구를 이루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작부터 성공을 구가한 것은 아니었다. 애플은 한 해 전에 최초로 GUI를 탑재한 ‘리사’를 출시했으나 결과는 참담했다. 리사는 1만 달러가 넘는 가격 때문에 대중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시장에서 사라졌다. 매킨토시는 이듬해에 애플이 심기일전해 내놓은 야심작이었다.
GUI는 1970년대 초반 제록스 팔로알토 연구소에서 어린이 교육용 컴퓨터를 개발하던 앨런 케이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케이는 1960년대 후반부터 맥루한의 미디어 이론과 제롬 브루너의 인지 이론을 접목해 어린이가 컴퓨터와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환경으로 GUI를 제안했다. 문자를 대신해 정보를 전달하는 아이콘, 스크린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중첩 윈도, 더글러스 엥겔바트가 개발한 마우스라는 입력장치가 GUI를 구성하는 삼위일체의 요소였다.
1970년대 후반에 제록스 파크 연구소를 방문한 잡스와 애플의 연구원들은 케이의 발명품을 눈여겨보았고 차세대 컴퓨터에 적용할 방도를 찾아 나섰다. 그리고 그 결과로 ‘데스크톱 메타포’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그것은 실제 책상 위에 놓인 사물 필기구 서류들을 모방한 아이콘으로 스크린의 가상세계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이는 컴퓨터 사용의 진입 장벽을 혁신적으로 낮추는 결과를 가져왔다. 사용자가 명령어를 외울 필요도 없고, 두꺼운 소프트웨어 매뉴얼을 뒤적거리는 시간도 줄었다. 사용자가 직관적으로 기능을 알 수 있는 아이콘들이 매뉴얼의 설명을 대신한 것이다. 애플은 또 독일 출신 디자이너 하르트무트 에슬링거의 ‘프로그 디자인’사를 끌어들여 컴퓨터 본체와 주변 기기의 디자인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 사용자 맞춤형 디자인의 선구
매킨토시의 혁신적 디자인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 초반까지 컴퓨터 운영체제의 패권을 장악한 것은 IBM 호환 기종에 탑재된 마이크로소프트의 도스였다. 매킨토시는 디자이너나 마니아들이 가지고 노는 값 비싼 하이테크 장난감 정도로 치부됐다.
그러나 인터넷이 대중화되자 상황은 반전했다. 컴퓨터는 네트워크와 연결되자 소프트웨어를 시뮬레이션하는 블랙박스 하드웨어에서 문화 콘텐츠를 중개하는 미디어 터미널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아이콘은 필수 사양이 되었다. 그것은 ‘사이버스페이스’를 항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조종타 구실을 해 주었던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도 매킨토시의 GUI를 모방해 ‘윈도우즈’를 업그레이드할 수 밖에 없었다.
매킨토시의 아이콘들은 인터페이스 시대의 개막을 알린 선구적 디자인이었다. 오늘날 디자이너들은 매킨토시의 디자이너들과 유사한 상황에 처해 있다. 디지털 기술 덕분에 제품의 기능은 기하급수적으로 향상되고 있으나 소비자들은 사용법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사용자의 80%가 제품 기능의 20%만을 활용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이 때문에 디자이너들은 사용자 경험을 눈여겨보고 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 디자인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최근 인간의 사고 과정이 컴퓨터 등 미디어와의 신체적 상호작용을 통해서도 발생한다는 인지과학자들의 주장도 인터페이스의 중요성에 주목한 결과였다. 이제 디자이너는 소비자의 단순한 시각적 즐거움을 넘어 사용자의 경험을 디자인하고 인간 사고의 확장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건표 카이스트 산업디자인학과 교수 kplee@ka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