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곤살레스의 ‘지니 하바나 체어’. 사진 제공 토니 곤살레스
“서양인의 눈으로 볼 때 아시아는 일본과 중국이다. 우리는 급속하게 성장한 한국과도 다르다. 세계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다른 길, ‘아세안 스타일’로 갈 수밖에 없다.”
필리핀 마닐라에서 만난 ‘무브먼트 8’의 디자이너 토니 곤살레스 씨의 말이다. ‘무브먼트 8’은 1999년 필리핀의 가구 및 액세서리 디자이너 8명이 결성한 디자인 그룹.
그들이 말하는 아세안 스타일은 무엇일까?
자연의 냄새가 풍기는 친환경스타일이다. 이 지역에서는 아바카 야자 대나무 라탄 리파오 등 주변에서 흔한 자연 소재가 가구와 인테리어 재료로 사용되고 있다. 여기에 저렴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한 핸드 메이드 기법과 모던 디자인이 가미되는 것이다.
“아세안 스타일을 구체적으로 말하면 ‘트로피컬 모던(Tropical Modern)’이다. 마치 열대의 자연을 실내로 옮긴 듯한 분위기이다. 유럽에서도 에코 디자인이 유행하고 있지만 임금이 비싸기 때문에 하이테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곤살레스 씨)
필리핀 정부가 운영하는 디자인 기구 ‘DTI’는 천연 자원에서 디자인 소재를 개발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홍보 책임자인 제나이다 시손 씨는 “직원 100여 명 중 15명이 디자이너를 도와주는 디자이너”라며 “이들은 출장 지역에서 재료 연구를 하면서 우수한 아이디어를 지닌 지방 디자이너와 제조업체를 연결해 주고 있다”고 밝혔다.
‘무브먼트 8’ 마케팅 디렉터인 라유그 봉 씨는 “아세안 국가에 속하는 디자이너들의 반응이 좋다”며 “8월 공동 전시회와 홍보 이벤트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아세안 스타일은 산업 디자인이 본격적으로 발달되지 못한 이 지역 디자이너들의 공통된 관심사가 되고 있다.
태국 ‘플래닛 2001’ 디자이너 우돔 우돔스리아난 씨는 “유럽과 아시아 지역 30개국에 가구와 인테리어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며 “서양이 우리 작품에 주목하는 것은 정교한 수공 솜씨와 자연미, 동양적인 분위기 때문일 것”이라고 밝혔다.
태국의 수출진흥기구 ‘DEP’ 수출 담당 책임자인 카타텅 통야이 씨는 “하이테크 분야는 아직 우리가 주인이 아니다”며 “가구 패션 보석 등 동남아에서 생산되는 천연자원의 자연미를 살린 디자인 개발과 수출에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닐라·방콕=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