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니커즈 튜닝에 재미를 붙인 영화배우 봉태규 씨. 물건에 자기만의 변화를 주는 튜닝은 휴대전화나 운동화 등으로 확산되면서 자신을 표현하고 대변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장소협찬 임피리얼 팰리스 호텔
“누구나 남들과 다른 무언가가 있습니다. 그것을 드러내고 보여 주는 것도 사람마다 다르죠. (운동화) 튜닝은 그런 특별함을 직접 드러내는 방식입니다.”
영화 ‘방과후 옥상’에서 주연을 맡은 배우 봉태규 씨의 스니커즈는 세상에서 하나뿐인 신발이다. 시중에서 파는 스니커즈에 직접 구상한 디자인을 가미했다. 얼룩말처럼 흑백 줄무늬를 넣고 뿌옇게 번지는 효과를 줘 오래 신은 듯한 느낌을 줬다. 이른바 ‘봉태규 스니커즈’.
이처럼 물건에 자기만의 인식표를 새겨 넣는 ‘튜닝’이 확산되고 있다. 새 신발이나 수십만 원짜리 휴대전화를 비롯해 컴퓨터 장난감 샤프펜슬 등 멀쩡한 물건들을 뜯어 고친다. 목적은 ‘나를 새겨 넣겠다’는 것. 자동차 성능 업그레이드나 라디오 수신 전파 조정을 뜻하는 튜닝이 이젠 자신의 분신 만들기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 자아를 드러내는 소통의 방식
미술이나 패션에 관심이 많은 봉 씨는 아디다스의 스니커즈 튜닝전문브랜드 ‘아디컬러’의 초대를 받고 튜닝 신발을 선보였다. 스포츠패션 브랜드에서 튜닝 전문브랜드를 출범시킬 만큼 튜닝이 대중화되어 있는 셈이다. 아디다스 측은 ‘봉태규 스니커즈’가 정장이나 캐주얼에 모두 어울리도록 심플하고 깔끔하면서 빈티지 분위기로 세련미를 줬다고 평했다.
봉 씨는 “TV 버라이어티 쇼에서 보여 준 (나의) 코믹 이미지는 방송이나 대중의 요구에 맞춰진 것”이라며 “그러나 튜닝은 나만의 세계를 드러내 보이는 소통이라는 점에서 적극 참여했다”고 말했다.
아디다스 코리아의 트렌드마케팅부 최보윤 과장은 “해외에서는 그래피티(벽화) 아티스트나 만화작가 등 신발과 상관없는 이들이 튜닝한 스니커즈가 인기를 얻어 정규 제품으로 나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아디컬러’는 가격이 저렴한 편도 아니다. 물감이나 도구 등을 풀세트로 구비하려면 30만 원이 넘는데도 튜닝 족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휴대전화 튜닝은 20, 30대 소비자들이 큰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국내에서 휴대전화 튜닝이 처음 시작된 2001년에는 외장에 그림을 그리는 수준이었으나 최근엔 성능을 업그레이드하는 경우가 많다. 휴대전화 튜닝업체 ‘튜센’의 강용희 대표는 “10대들이 관심을 많이 보이지만 실제 튜닝을 하는 이들은 구매력이 있는 20대와 30대 초반이 많다”고 말했다.
최근 인기를 끄는 튜닝은 광섬유나 발광물질을 이용해 휴대전화에서 화려한 빛이 나도록 하는 것. 휴대전화의 내부 기판에 발광다이오드(LED)를 넣어 키패드에서 빛이 나도록 하거나, 표면에 큐빅이나 발광 물질을 칠해 전화가 올 경우 빛나게 한다.
간단한 튜닝 비용은 평균 5만 원이지만 여러 튜닝을 한꺼번에 하면 비용도 만만찮다. 휴대전화 모양을 미니 자동차로 완전히 바꾸고 키패드와 라이팅을 모두 손보면 40만 원 정도 든다.
요즘은 튜닝 도구를 마련해 직접 하는 이들도 많다. 강 대표는 “튜닝을 직접 하면 비용이 훨씬 많이 드는데도 튜닝아카데미를 열면 취미로 해보려는 이들도 많이 온다”고 말했다.
○ 자동차 튜닝이 원조
튜닝은 자동차가 원조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자동차 튜닝은 마약과 같아 한번 매력을 느끼면 차보다 더 많은 튜닝비를 쓰기도 한다.
무역업을 하는 박형일(30) 씨는 일본 스포츠카 ‘마쓰다 RX7’을 ‘풀 튜닝’한 경우. 튜닝 비용만 7000만 원 정도 썼다. 외장부터 엔진을 포함한 내장까지 모두 바꿔 250∼270마력짜리 마쓰다 RX7을 450마력짜리 포르셰 급으로 업그레이드했다.
박 씨는 “수년 전 외국에서 튜닝 자동차가 거리를 달리는 것을 보고 한눈에 반해 튜닝에 관심을 갖게 됐다”면서 “조금씩 차를 업그레이드할 때마다 나만의 자동차가 속도나 승차감이 바뀌는 쾌감은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자동차 튜닝이 본격화된 것은 1990년대 중반. 1990년대 초 한국의 첫 스포츠카 모델격인 ‘스쿠프’의 출시를 계기로 시작됐으며 ‘티뷰론’의 등장과 함께 급성장했다. 현재 시장은 1조 원 규모.
외제차 튜닝도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서울지역의 외제차 튜닝 전문 업체가 3년 전 1곳에서 현재 4곳으로 늘었다. 자동차 튜닝업체 카렉스의 김유환 주임은 “1∼2% 정도밖에 안 되던 외제차 튜닝 점유율이 비용만 따지면 20% 정도로 급성장했다”고 말했다.
요즘 인기 있는 튜닝 차는 BMW 미니. 젊은 감각에 맞으면서 화려하고 아기자기한 ‘드레스업(외장 튜닝)’이 잘 어울려 ‘미니=튜닝’이란 등식이 서울 강남 일대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자동차 튜닝은 남성 고객이 절대적으로 많다. 연령대는 20대 중후반, 30대가 많고 40대도 꽤 있다. 20대와 30대 초반은 튜닝을 하면 외장을 먼저 바꾼 뒤 성능 튜닝을 하지만 30대 중반 이상은 외장을 바꾸지 않고 성능만 튜닝하는 이들이 많다.
○ 물건을 직접 통제하는 데서 쾌감 느껴
튜닝 문화가 확산되는 것은 인터넷을 통한 정보의 교환과 관련 기술의 발전 덕분이다. 개성이나 취향이 비슷한 튜닝족들은 인터넷을 통해 해외 정보를 교환하기도 하고, 스스로 모임을 만들어 토론을 벌이기도 한다.
카렉스의 신춘호 과장은 “동호회나 해외 사이트에서 구체적인 정보나 견적을 살피고 오는 고객들이 많아지면서 튜닝 시장 규모도 다양해지고 고급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휴대전화 튜닝 카페인 ‘OOPS(cafe.daum.net/onlyonephone)’는 회원이 20만 명이 넘는다. 이들은 단순히 정보 교환에서 그치지 않고 세부 기술이나 문제점에 대한 온라인 토론도 활발하게 벌인다. 카페 개설자인 장희범 이종현 윤도상 씨는 직접 튜닝을 하려는 이들을 위해 ‘개깜빠의 핸드폰 튜닝 길라잡이’라는 안내서도 냈다.
명지대 여가정보학과 김정운 교수는 튜닝족의 적극성을 ‘자기 표현 욕구’로 설명했다. 튜닝족은 자신의 노력과 투자를 통해 상황 자체를 스스로 통제하는 데서 존재감을 발견하며, 비슷한 가치를 추구하는 마니아 문화로의 진입에 쾌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마라톤처럼 자기 고통의 확인을 통해서가 아니라 튜닝족은 물건 제작의 모든 과정과 결과를 통제하는 자체에서 존재의 이유를 찾는다”며 “사회가 성숙되고 ‘다름’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수록 튜닝 같은 마니아 문화는 더욱 확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사진=변영욱 기자 cu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