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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위크엔드]주중엔 파리에, 주말엔 동유럽서 쇼핑

입력 | 2006-04-07 07:25:00


《최근 필자는 이탈리아 밀라노로 갈 때 파리 오를리 공항에서 출발하는 저가 항공 이지젯을 이용했다. 출발 예정시간은 오전 11시. 하지만 기내에 탑승해 안전띠를 매고 동행한 친구들과 2시간 넘게 얘기를 나눴는데도 이륙할 기미가 없었다. 승무원은 “기계에 작은 문제가 발생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는 말만 반복했다. 2시간이 지나도록 갇혀 있는 통에 짜증이 나 있던 승객들은 기계에 문제가 있다는 말에 더욱 술렁거렸다. 마침내 이륙 안내 방송이 들렸다. 비행기는 부드럽게 활주로에 올라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몇 초도 안돼 다시 급히 속도를 낮추더니 “여전히 기계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추정돼 이륙을 포기한다”는 기내 방송이 나왔다. 비행기는 다시 출발 터미널로 돌아가고 있으며 다른 비행기가 오를리 공항에 도착하면 그 편을 이용해 재출발하겠다는 안내가 이어졌다.

그러고 나서 2시간을 더 기다린 뒤에야 다른 비행기로 갈아타고 무사히 이륙했다. 밀라노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노련한 여승무원은 지연 출발로 불만이 가득한 승객들을 무마하려는 듯 농담 섞인 안내 방송을 시작했다.

“곧 착륙합니다. 혹시 가져오신 가방이나 서류, 그리고 무엇보다 남편을 잊지 말고 챙겨 가시길 바랍니다. 현재 밀라노의 날씨는 섭씨 15도로 매우 화창하고 덥습니다. 뜨거운(hot) 여행이 되실 겁니다. 아, 날씨가 그렇다는 겁니다. 다른 생각은 말아 주시고요.”

비행 내내 얼굴을 찌푸렸던 승객들은 큰 박수를 보내며 웃음을 터뜨렸다.

이날 경험한 에피소드에는 저가 항공사의 장단점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우선 장점은 싸고 편리하다는 것. 인터넷을 통해 예약과 항공권 발권을 모두 할 수 있으며 공항에선 간단한 신분 확인만 하면 되므로 체크인하는 데 시간이 별로 들지 않는다. 캐주얼하고 유머 있는 승무원들의 모습도 친근하다.

그러나 비행기가 연착되거나 취소되면 보상 규정이 없다는 게 단점이다. 이날 많은 승객이 항공사 측에 별다른 항의를 하지 못한 게 바로 저가 항공사 측의 이런 약관 때문이다. 짧은 시간에 같은 항공기를 여러 번 연이어 출발시키다 보니 안전사고를 염려하는 시선도 많다. 지난달 말 아일랜드의 저가 항공사인 라이언 에어 소속 여객기는 조종사의 실수로 승객들을 도착 예정 공항이 아닌 인근 군비행장에 내려주었다. 드물긴 하지만 이런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유럽인들, 특히 파리지앵들에게 저가 항공사의 인기는 식지 않을 듯하다. 저가 항공사를 여섯 번 이용하는 동안 그중의 절반이나 비행기가 2시간 이상 연착되는 경험을 했다는 니콜 코모 씨는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저가의 매력을 떨칠 수 없다”고 말한다. 일반 항공사를 이용하면 유럽 내 다른 국가로 갈 때 최소 200유로(약 23만6000원)가 들고, 출발 일자가 가까울 때 사면 700유로(약 88만 6000원) 이상을 내야 한다. 그러나 저가 항공사의 요금은 내일 출발할지라도 150유로(약 17만7000원)를 넘는 경우가 많지 않다. 저가 항공사의 항공 운임은 출발 날짜가 가까울수록 비싸게 책정되므로 한 달 이상 여유를 두고 예약할 경우 세금을 빼고 10유로(약 1만1800원) 안팎에 이용할 수도 있다.

미국의 워싱턴포스트는 최근 버스 요금만큼이나 싼 비행기 티켓이 유럽인들의 삶의 패턴을 바꾸고 있다고 보도했다. 저가 항공이 보편화되면서 서유럽인들이 크로아티아나 포르투갈의 바닷가처럼 이웃 유럽 국가 경치 좋은 곳의 별장을 사들이고 있으며, 좀 더 싼 가격으로 치료를 받거나 사교 생활을 즐길 수 있는 나라로 쉽게 여행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이 같은 수요에 힘입어 저가 항공사들도 급성장하고 있다. 유럽 내 최대 저가 항공사인 라이언에어는 지난해 3500만 명의 승객이 이용했다. 5년 전인 2000년의 5배나 되는 실적이다. 이지젯도 2000년 600만 명에서 5배 늘어난 3000만 명을 실어 나른 것으로 집계됐다. 유럽의 저가 항공은 2000년 이후 붐을 타기 시작했다. 이는 유럽 각국의 정부가 자국기에 대한 보호 조치를 대폭 줄인 직후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이런 수치가 말해주듯 파리지앵과 파리에 사는 외국인들은 저가 항공이 유럽 전체를 일일생활권으로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입을 모은다.

이탈리아인인 막시 니콜렐리 씨는 주중엔 파리에 있는 대학원에 다닌다. 그는 주말이면 저가 항공을 이용해 이탈리아에 있는 가족이나 스페인 바로셀로나에 있는 친구들을 만나러 간다. 그는 “국내 기차 요금보다 싼 가격으로 다니다 보니 외국에 간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국적 생활용품 회사에 다니는 나탈리 필리옹 씨는 “스페인이나 동유럽처럼 물가가 싼 곳에 가서 여행 겸 쇼핑을 즐기는 이도 많은데, 파리의 물가가 워낙 비싸 교통비를 빼고도 남는다”고 말했다. 그는 “다가오는 부활절 전후 짧은 휴가를 이용해 가족과 친척들이 함께 로마에 가기로 했다”며 “여덟 명의 왕복 비행기표 가격이 세금을 빼고 200유로 정도로 일반 항공편 한 명분보다 싸다”고 말했다.

김현진 사외기자 kimhyunjin517@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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