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200억 달러(약 20조 원) 지출, 60년간 5500억 달러(약 550조 원) 대출, 직원 2만6000명, 회원국 184개국 그리고 한 해 줄잡아 4억 달러(약 4000억 원) 증발.’
세계 최대의 빈곤퇴치기관인 세계은행(WB)과 관련된 주요 수치들이다. 마지막 항목에 이르면 세계은행의 이미지는 ‘세계 최대의 복마전’으로 뒤바뀐다.
세계은행은 하루에 1달러(약 1000원)로 연명하는 극빈층을 위해 도로와 철도 등의 건설사업을 일으켜 일자리를 마련하고 교육과 보건사업을 하고 있다. 입찰을 통해 각국의 크고 작은 기업들에 일감을 맡긴다.
이를 따내기 위해 세계은행 직원들에게 뒷돈(뇌물)이 건네진다.
유에스뉴스 앤드 월드리포트 최근호(3일자)는 “지금까지 1000억 달러(약 100조 원)가 부패로 인해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지적했다.
세계은행의 아프리카지역 담당 중간관리자인 레슬리 장로베르 팡(56) 씨는 직원 부패의 대표적 사례다. 아이티 출신인 그는 1980년대만 해도 파산 상태였다. 통장에는 고작 10달러(약 1만 원)만 있었다.
세계은행에 입사한 1989년 연봉은 5만4000달러(약 5400만 원)였다. 그는 얼마 후 1만2000여 m²(3600평)의 저택을 45만5000달러(약 4억5500만 원)에 사 20만 달러(약 2억 원)를 들여 수리했다. 스위스 은행의 계좌에는 250만∼300만 달러(약 25억∼30억 원)가 들어 있다.
세계은행은 1995년 팡 씨가 뇌물을 받았다는 주장이 제기됐지만 본격 조사는 10년이 흐른 2005년에야 착수했다. 팡 씨 사건은 현재 미국 연방검찰로 이첩됐다.
이 진 기자 lee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