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디자인진흥원의 김철호 원장. 한국의 디자인은 인프라에 비해 창의력 있는 소프트웨어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홍진환기자
디자인 인력을 구하는 최고경영자(CEO)이거나 디자이너를 꿈꾸는 학생이라면, 아니 이미 사회 트렌드의 하나로 자리잡은 디자인에 흥미를 가진 그 누구라도 가 볼 만한 곳이 있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에 있는 한국디자인진흥원(www.kidp.or.kr)이다. 산업자원부 산하 기관으로 36년 역사를 지녔다.
지난해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디자인 코리아 20005’를 열어 디자인 대중화를 선도했으며 지난해부터 ‘차세대 디자인리더’ 30여 명을 선발해 젊은 디자이너를 육성하고 있다. 우수 산업디자인상품 인증인 굿 디자인(GD)으로 국내 산업 디자인의 수준을 끌어올리기도 했다.
디자인진흥원 사무실에서 만난 김철호 원장은 ‘튀는’ 패션 감각과 달변을 지녔을 것이라는 기자의 선입견과는 동떨어진 모습이었다.
LG전자 부사장(디자인경영센터 소장) 출신으로 3년째 이곳을 지휘하고 있는 그는 집무실 와인냉장고에 수집된 수십 병의 와인 레이블과 맛을 잘 알지 못했다.
“선물 받은 것이라서…. 혹시 이 와인에 대해 아세요?”라고 되물을 때는 동네 아저씨 같기도 했다. 그러나 디자인에 대한 화제가 나오면 이내 진지한 표정으로 바뀌었으며 약간 어눌한 듯한 말씨에는 강한 힘이 담겨 전해 왔다.
“디자인진흥원의 역할은 국민에게 폭넓은 디자인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이윤 창출을 추구하는 기업과 다릅니다. 영국의 디자인 잡지인 ‘아이콘’이 최근 21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디자인계 이슈 20가지 선정하면서 한국을 포함시킨 것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아이콘 잡지는 한국을 ‘디자인 진흥을 위해 세계에서 가장 폭넓은 정부 지원 정책을 실시하는 나라’로 소개하면서 ‘서울 거리에 들어서면 이 도시가 동북아의 스타일 수도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평했다.
산자부의 ‘산업기술개발 효과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기술 개발은 평균 2, 3년 동안 4억 원이 투입돼 4배의 매출 증가 효과를 갖는 데 비해 디자인은 6∼9개월 동안 2000만 원이 투입돼 22배의 매출 증대를 올린다. 국내에서는 매년 3만7000명의 신규 디자인 전문 인력이 배출되고 있으며 디자인 전문회사는 1만2000곳이다.
김 원장은 “디자인 인프라에 비해 창의력 있는 소프트웨어가 부족한 실정”이라며 “자본력을 지닌 대기업과 달리 디자인 연구개발에 투자하기 어려운 중소기업을 중점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디자인진흥원의 사업 중 디자인혁신기술개발 지원사업이 있다. 디자인을 개발하고 싶지만 자체 능력이 없거나 디자이너 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을 디자인 전문가와 연결시켜 주고 디자인 개발비를 지원해 주는 것이다.
디자인진흥원은 또 지난해 호주와 우수 산업디자인 선정 제도의 상호 인정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해 한국 디자인 상품의 수출 기반을 넓혔다. 싱가포르 중국 등으로 협력 국가를 확대할 계획이며 11월에는 중국 상하이에서 ‘디자인 코리아 2006’도 연다.
김 원장은 프랑스 문화비평가 기 소르망이 무한 글로벌 경쟁시대 한국에 던졌던 메시지를 늘 되새긴다고 말했다. 그것은 ‘한국이 경쟁력을 갖추려면 한국 고유의 이미지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세계적 참살이 식품인 김치와 관련한 디자인을 더 고민해 볼 수도 있겠죠. 김장독 형태의 김치냉장고도 좋겠고요. 우리 것을 알리고, 또 남의 것도 부지런히 익혀야 합니다.” 이쯤 해서 디자인진흥원에 대해 조금 알게 됐다면, 국내 유일의 디자인 전문자료실인 디자인진흥원 디자인정보자료실에 가보길 권한다.
220평 규모에 2만여 권의 단행본과 학위논문, 3만여 권의 정기간행물, 500여 종의 멀티미디어 및 영상자료 등 40여만 건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있다.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으로 온라인 서비스도 가능하다. 어쩌면 당신이 찾는 디자인 해답이 아라비안나이트의 ‘열려라, 참깨!’ 주문과 함께 미소짓고 있을지 모른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